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영화리뷰]참담한현실.매트릭스.(The Matrix.1999)

by 꿈꾸는구름 2019. 12. 15.
반응형

-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재개봉 영화 포스터 (다음 발췌)

  평범한 프로그래머이지만 밤에는 해커로 활동하는 토마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은 어느 날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고 알 수 없는 요원들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는 모피어스(로렌스 피쉬번)라 불리는 인물에 의해 구출되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실재가 아닌 매트릭스(Matrix)라 불리는 기계 지성으로부터 창조된 가상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피어스는 앤더슨에게 빨간약과 파란 약을 건네며 매트릭스 속에서 진실을 망각한 채로 살아갈지, 아니면 '네오'가 되어 진실을 깨닫고 기계 지성으로부터 인간이 가진 존엄성을 지켜낼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권유한다. 한편, 매트릭스 시스템의 눈엣가시와 같은 모피어스와 그 일당, 그리고 그들의 근원인 '시온'을 제거하여 완벽한 통제를 꿈꾸는 기계 지성으로부터 사육당하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이들은 다시 매트릭스로 뛰어들게 된다.

빨간약? 파란약? 삶은 선택의 연속. (다음 발췌)

  영화의 기본 배경은 실재하는 세상이 매트릭스라고 불리는 가상 공간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의식,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그리고 항상 통제를 하는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트릭스의 창조주는 인간이 만들어 낸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이다. 이에 의하여 인간은 초라한 존재로 전락한다. 인간이 영위하는 일체의 두뇌활동은 실제로는 기계 신의 지배를 받고 그의 의도대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프로그램화된 연산 작용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이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구축된 허구의 세상이라는 사실을 영원히 인식하지 못하는 채로 살아간다. 마치 동물원에 평생 갇혀 사는 동물들처럼, 수목원에서 자라나는 식물처럼 말이다.

AI에 의해 사육되는 인간육체들. 기계들의 에너지원. (다음 발췌)

  영화적인 기법으로만 볼 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슬로우 모션, 시분할 촬영기법을 통하여 놀라울 정도의 시각적 효과를 보여주는 액션 영화이지만, 22세기 말의 암울한 미래와 기계 신으로 인한 인간 사육, 소외를 고도의 정제된 철학과 종교적 관점에서 기반한 스토리의 구축으로 표현을 하였다는 평에 무게가 실린다. 평범한 청년 앤더슨에게 빨간약과 파란 약을 건넨 모피어스는 기계 신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존재(NEO)의 강림을 기원한다. 현실에 순응하고 지금과 같이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깨닫고 현실에 저항을 할 것인지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감독의 의도한 매트릭스에 대한 본질을 나타낸다. 매트릭스 안에 있다면 진실을 알기 전에는 아무것도 불편하지 않다. 지속적인 통제를 가하고 있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못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기계문명의 범람과 침범, 그로 인해 인간이 잠식당하고 지배를 당하는 상황을 작품을 통해 경고를 한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순수한 고결함을 잃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대표적 장면(네이버 발췌)

  '현실'이란 나타나 있는 실제를 뜻한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그리고 현존하는 '나'라는 존재, 이 모든것은 현실이다. 이에 반하여 내가 꾼 꿈, 머릿속에 있는 나의 상상은 현실이 아니다. 그저 현실의 껍데기를 쓴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이 현실이 아니고, 허상이 허상이 아니라면 현실과 허상, 허상과 현실이 서로 뒤바뀌어 그 시재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세계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를 논의할 가치가 없는 공상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인간의 허상에 대한 의존이 유의미할 정도로 확산되었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것일까. 그 허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창-디지털 문명의 발달로 실제 존재하지는 않지만 실재한 것을 모방한 가상의 공간이 인간의 인식체계에 침투하여 실재의 존엄성을 농락하는 일에 대한 경고는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 (다음 발췌)

  매트릭스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숫자나 기호 등을 바둑판식으로 나열한 행렬을 의미한다. 이는 격자 형태로서 의미를 확장한다면 3차원을 나타내는 세 개의 축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을 뜻한다. 이는 실체가 아닌 각 축의 값이라는 수치로 표현되는 세상이다. 또 다른 뜻은 특정한 개체의 사회적 성장을 가능케하는 기반을 의미한다. 크게 보면 두 가지 의미는 하나의 의미로 보일 수 있다. 현재 시중에 나오는 게임들은 대부분 3차원의 공간 속에서 구현되고 있다. 등장인물과 배경, 물리적인 효과들은 거의 현실과 다름없이 닮아 있다. 게이머는 게임 속의 캐릭터가 되어 게임 내의 가상공간을 배회한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단지 현실을 모방하여 만든 실재가 아닌 세계일 뿐이다  

네오와 천적관계인 스미스요원(네이버 발췌)

  기계화 시대의 물질만능주의와 그에 따른 인간 소외에 대한 경고는 디지컬 문명의 발전과 함께 지속적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단편적으로는 폭력적인 게임에 중독되어 가상현실인 게임에서 저지르던 폭력을 현실에서 저질러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 정도이겠지만, 실제로는 영화에서 표현한 것처럼 인간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기계가 인격과 지성에 침투하여 인간이 비인간적으로 변하게 되는 경고가 그 요지이다. 현재에도 한창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에서 인간의 최후보루인 '시온'을 소탕하기 위해 괴력을 발휘하는 스미스 요원(휴고 위빙) 일당이 인간에 대해 가지는 적대감은 기계가 지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가정을 했을 때 가장 암울한 감정일 것이다. 

네오와 트리니티 (네이버 발췌)

  철학적이고,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요소도 지니고 있는 따지고 들면 영화를 분석하기에는 꽤나 어려움이 있는 영화이다. 한번만 보고 그 세계관을 이해한다는 것도 어렵고, 3편의 시리즈를 다 보고 거기다가 외전 형식으로 제작되었던 '애니 매트릭스'까지 다 섭렵을 해야 감독들이 의도한 세계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네오와 트리니티의 멋진 검은색 가죽의상과 현란한 액션에 한눈을 팔다가 의미를 놓친다면 결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영화이다. 영화의 종반에 각성을 하고 자신들을 뒤쫓던 요원들을 눈빛으로 도망가게 하는 '네오'의 모습을 보면서 이어질 2,3편이 너무나 기대되었던 기억도 난다. SF영화상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철학적이고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