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영화리뷰]추억을추억하다.살인의추억(Memories Of Murder.2003)

by 꿈꾸는구름 2019. 5. 26.
반응형

-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미결 살인사건'이라는 소재는 '미결'이 주는 애매모호함이 매력적인 소재이다. 이를 다루는 감독의 소재운용과 연출폭은 자연스레 그 범위를 한계짓지 않을 수 있다는데에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감독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자유로움에 빠져버리게되면 혼자만의 영화를 만드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쉽다. 그런점에서 '겨우' 두번째 장편인 '살인의 추억'을 연출한 봉준호감독은 이 매력적인 재료를 가지고 환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1980년대의 지우고 싶은 암울한 우리의 모습과 그로 인해 잔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더라도 해결하지 못하는 후진성이 영화전반에 답답함을 주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고군분투하는 형사들의 모습을 보며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섬세하고 디테일한 그의 연출력은 신인감독의 '그것'은 아니었으며 부드러운 화면전개와 빠른 장면전환은 사건의 긴박함을 잘 전달해 주었다. 그 이후의 필모그래피는 이러한 것이 결코 우연으로 만들어 진게 아니었음을 잘 보여준다.  

영화의 주요인물들 (다음 발췌)

  1980년대에 발생한 '화성연쇄살인사건' 이라는 희대의 미결사건을 다룬 연극 '날 보러와요.'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그 해 모든 영화제에서 메인 이슈가 된 영화였다.평단의 극찬과 관객의 환호를 동시에 받은 흔치 않은 영화였다.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영화를 이끄는 호흡은 한국의 정서가 가득담긴 스릴러의 완성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영화곳곳에서 보여지는 80년대 자행되던 우리 사회의 부조리들은 우리의 아픈곳을 후벼 파낸다. 잘 알려진대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송강호'는 봉준호감독의 작지만 컸던 마음 씀씀이로 인해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두 주연배우. 송강호 김상경.(네이버 발췌)

  무명배우시절 오디션을 마친 송강호에게 당시 조연출이었던 봉준호감독은 음성메세지를 보낸다. '인상깊은 연기 잘 봤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인연이 안되어 함께 작업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나중에 감독이 되면 꼭 출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남긴 이 한통의 음성메세지는 무명배우였던 송강호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을 주었고 그와 동시에 커다란 응원메세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람이 나중에 감독이 되어 출연요청을 하면 반드시 하겠다고 다짐한다.이 약속을 잊지않고 있던 송강호는 몇년 후 유명한 배우가 되었지만, 신인감독이었던 봉준호감독이 조심스레 출연제의를 하자 그때를 기억하고는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세상사는 인연은 어느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특히나 인관관계는 더 그렇다.

오마주 인듯한 연극적인 화면구성(네이버 발췌)

  이 영화에서는 조연들의 연기도 인상깊었는데 변희봉, 박해일, 송재호와 같은 베테랑급 연기자들 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김뢰하, 박노식 과 같은 배우들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주연들 외에 가장 인상깊었던 배우는 살인용의자를 연기하는 '박해일'이다. 그 깊이를 알수 없는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면 그가 과연 범인일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흉학함이라고는 절대 찾아보기 힘든 얼굴을 하고 있기에 그가 그런 잔인한 방법으로 부녀자들을 살해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도 어렵다. 그게 이 사건의 맹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평범하고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흔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용의자라는 설정이니까... 영화를 관통하는 암울하고 음침한 분위기는 이 영화가 스릴러임을 잊지않게 해주지만 곳곳에서 보여지는 코믹한 요소는 자칫 무겁게만 진행될 수 있는 영화를 적절히 견제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송강호의 다양한 연기도 볼 수 있는데 줄곧 유머를 겸한 진지함을 보여주다가, 영화의 말미에는 범인에 대한 갈증아닌 갈증으로 오히려 냉철해지는 연기를 보여준다. 김상경의 연기도 그러한데 송강호와는 상반되게 줄곧 냉철한 이성으로 사건에 집중하지만, 영화의 말미에는 송강호와는 반대로 광기어린 모습을 보여준다. 두 배우의 밸런스가 그래서 좋다. 서로 앙숙같은 사이로 지내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그게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잔상이 남은 마지막장면 (다음 발췌)

  많은 명장면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몇년 후 우연히 사건장소를 지나다가 들른 그곳에서 '며칠전 누군가 아저씨와 똑같이 그 곳을 유심히보던 사람이 있었다'는 아이의 말을 전해들은 송강호가 아이에게 묻는다. '그 아저씨 어떻게 생겼어?' 아이가 대답한다. '음... 그냥 평범하게 생겼어요.' 그 남자가 범인임을 직감한 송강호는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페이드아웃 된다. 카메라 너머의 누군가를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송강호가 바라 보았던건 무엇일까? 김뢰하의 인터뷰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것 같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연극 '날 보러와요'는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범이 보러 올 것이라 생각하고 만든 연극이다." 어두운 극장안 관객들사이에 앉아 있었을, 붙잡히지 않은 그 연쇄살인범을 바라보고 있었던건 아닐까. 그랬었으면 좋겠다. 송강호의 그 눈빛을 기억하며, 나보더 더 오싹함을 느꼈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추억을 추억하면서 말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