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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초콜렛상자에서발견한인생관.포레스트검프(Forrest Gump.1994)

by 꿈꾸는구름 2019.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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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메인 포스터 (다음 발췌)

  살면서 본 몇 안 되는 사랑스러운 영화, 포레스트 검프. 관객의 감정을 붙잡고 억지로 끌어올리는 갈등 요소 하나 없이,  잔잔하지만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장면들의 연속으로 관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이끈다. 그리고 감동과 웃음도 선사한다. 잔잔한 호수같은 영화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평화로워서 뭐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감동이 배가 되고 웃음과 울음이 절로 나게 되는 그런 영화이다. 톰 행크스란 명배우가 두 시간이 넘는(142분) 런닝타임을 홀로 이끌어 가지만 전혀 힘겨워 보이지 않는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스크린을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극 중 '포레스트 검프'처럼. 역사적 사실과 주인공의 삶을 교묘하게 실타래처럼 엮어 놓은 시나리오 기술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적'인 사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어떠한 매체가 아닌 오직 '영화'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기술들로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구성하였다. 

어린시절 절친이 된 제니와 포레스트 (다음 발췌)

  어릴 적부터 가지게 된 불편한 다리와 남들보다 떨어지는 지능을 가진 '포레스트'를 사람들은 도와주기는 커녕 자신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기에 바쁘기만 하다. 조롱하고 얕보면서. 그런 그에게는 자신을 돌보아주는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어머니와 자신에게 선뜻 버스 옆자리를 내어준 '제니'만이 있다. 두 사람이 전부인 세상에서 불편한 두 다리로 버텨낸 포레스트는 '보조기'를 차고 있던 두 다리가 자유로워지면서 변한다.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첫 장면은 '포레스트'의 뜀박질 장면이다. 극 중 초반에 보이는 '포레스트'의 다리는 '보조기'가 없으면 걷는 것은 무리이고 서 있을 수도 없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런 그에게 '보조기'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요한 물체이다. 보조기가 없으면 남들과 똑같이 서 있을 수 없는 상태였기에 남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하지만 은연중에 사람들은 그 보조기를 무시했고 그것을 지니고 다녀야 하는 포레스트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았다. 오직 제니만이 보조기를 주시하지 않고 인격체로서 포레스트를 인정한 것이었다. 타의에 의해 보조기가 두 다리에서 떨어지면서 이제 보조기가 없어도 뛸 수도 있고 서 있을 수도 있게 된다. 그가 더 이상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빨리 달리는것 하나로 대학에 입학하는 포레스트 (다음 발췌)

  그렇게 힘을 얻고 나서는 포레스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엄청나게 잘 뛰는 것만으로도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 후 바로 군입대를 하게 되고'베트남'에 참전하게 된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말하는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단다. 어떤 것을 꺼낼지 모르거든."이라는 대사처럼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사적인 사실 안에 포레스트를 자연스럽게 등장시켜서 '그곳에 포레스트가 있었다'라는 사실을 영화적으로 구성해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군입대하게 되는 포레스트 (다음 발췌)

  영화는 이를 단순하게 재미를 위한 유희적인 요소로 사용하는데 그치지는 않는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포레스트는 또다시 유년시절 겪었던 사회의 시선을 느끼게 된다. 그곳에는 어릴 적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 준 '제니'같은 '버바'가 있었다. '버바'의 끝없는 새우 이야기에 포레스트는 자상하게도 끝까지 귀를 기울여주는데 이에 '버바' 또한 포레스트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지만 '버바'는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전쟁에서 우리가 잃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포레스트의 총알 맞은 엉덩이나, 댄 중위의 두 다리뿐만 아니라 '버바'가 꿈꾸고 있었던 '새우잡이배 선장'과 같은 꿈도 빼앗아 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베트남전에서 얻게된 친구인 버바(미켈티 윌리엄슨) (다음 발췌)

  영화는 '포레스트'를 하나의 '집' 혹은 돌아가야 할 '고향'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제니를 통해 보이는 부분인데, 제니에게 집은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와 형제들을 때리는 폭행을 일삼는 사람이었고, 아버지를 피해 옮기게 된 할머니의 집은 개가 짖는 소리 때문에 더 무서웠다고 표현되니 말이다. 하지만 '포레스트'의 집은 그녀에게 편안한 장소였는지 그녀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면 찾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극 초반에는 제니가 포레스트의 '보조기'같은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방황하는 제니에게 오히려 포레스트가 '보조기'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된다. 

성인이 되어 다시만난 제니(로빈 라이트)와 포레스트 (다음 발췌)

  이후 아주 짧은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이별을 하게 된 두 사람은 다시 각자 홀로 된 삶을 살아가는데, 마음에 상처를 받은 포레스트는 몇년간 미국 전역을 달리기로 다니며 유명인사가 되고, 그런 그를 제니는 티브이를 통해 보게 된다. 몇 년이 지나 제니와 연락이 다시 닿은 포레스트는 제니를 만나고, 자신의 아들을 홀로 키우는 제니를 보고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제니는 병에 걸린 상태였고 이내 죽음을 맞게 된다. 결국 포레스트를 제일 처음 안아주었던 제니는 포레스트의 품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고, 포레스트는 그런 제니를 아무 말 없이 따뜻하게 안아주고 가슴에 품는다.

마음에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달리는 포레스트 (다음 발췌)

  무슨 초콜릿을 꺼낼지 몰라서 어떤 맛인지는 먹어봐야 아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의심하지만, 그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포레스트가 영화에서 내내 보여주었던 것처럼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들을 거부하지 않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면 자신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행운은 우리를 그 앞으로 이끌 것이다. 바보짓을 해야 바보라는 말처럼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열광을 했던 이유는 포레스트가 역사의 중심에 있어서가 아니라 다음은 어떤 초콜릿을 꺼내 먹을지 궁금해서 끝까지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게 된 것은 아닌가 싶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려준 '바람에 날리는 깃털'이 의미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깃털과 같이 살아가다 보면 포레스트의 손에 잡혀 책 속에 꽂혀 있기도 하고 어느새 다시 책 밖으로 나와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깃털은 화면으로 돌진해 오며 사라진다. 다음은 깃털을 잡은 사람이 선택할 차례인 것이다.

새우잡이 어선을 함께 타게 된 포레스트와 댄 중위(게리 시니즈) (다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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