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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홀로안은공포감.인생은아름다워(La Vita E Bella.1997)

-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포스터 (다음 발췌)

  웃음에도 종류가 있다. 요즘 미디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유머'란 보통 타인을 조롱하거나 자학의 코드를 담고 있다. 이처럼 상황과 당사자의 심경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깎아 내리거나 조롱 섞인 부정적인 웃음이 있는 반면, 절망적인 순간 삶을 소생시키는 힘을 주는 긍정적인 웃음이 있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그 후자를 이야기한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상 가장 어둡고 침울했던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역설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고 희생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감독이자 주연인 로베르토 베니니 (다음 발췌)

  영화가 시작되는 배경은 세계 제2차 대전이 일어날 무렵, 독일이 막 유대인들을 학살하려고 하던 직전의 모습을 비춘다. 항상 유쾌한 삶을 살고 있는 탓에 때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을 만큼 모자라는 듯한 행동을 하지만 사실은 천재적이고 지혜로운 주인공 귀도, 그는 사랑하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 아들 조슈아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만, 그 행복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히틀러를 대두로 하는 유대인 학살이 시작되면서 붕괴되어 버린다. 그리고 독일이 아직까지도 대를 이어 회개하고 있는 그 참혹한 역사의 현장,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귀도와 사랑에 빠지는 도라(니콜레타 브래스키) (다음 발췌)

  이 영화는 비극을 비극적으로 그려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역설적인 애틋함이 밀려온다. 지옥과도 같은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아들의 영혼과 육체를 보호하려 애쓰는 한 아버지의 고군분투를 그려낸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절대 힘들어하지도 않고, 서러워하지도 않고, 우는 일이 없다. 그는 늘 웃는다. 그가 웃는 이유는 아들을 위해서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는 아들을 위해 자신의 자존심은 물론, 감정까지도 모두 희생한다. 때로는 담대하게 자신들이 언어를 모르는 적군들을 속여가며, 오로지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건 연기를 한다. 아버지는 차마 전쟁과 죽음, 포로와 학살이라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설명할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섯 살짜리 조슈아를 달래며 그는 어른들이 노역에 참여하고 있는 동안 조슈아가 독일군들의 눈을 잘 피해 숨어 있을 수 있도록 게임에 참여했다고 말을 한다. 아주 흥미로운 게임에 참여하게 된 것이고 게임에서 1등을 하는 사람에게는 상품으로 탱크가 주어진다는 이야기를 한다.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죽음을 앞둔 상황을 현실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아들이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조슈아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열심히 독일군을 피해 다니며, 울지도 배가 고프다고 조르지도 않는 기특한 열심을 보여준다.

수용소에 갇히게 되는 귀도와 조슈아 (다음 발췌)

  영화는 주인공의 톡톡 튀는 대사와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 등으로 언뜻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주인공을 제외하고 그를 둘러싼 모든 배경과 상황은 갈수록 극렬하게 대비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아이러니와 함께 안타까움을 만들어낸다. 오히려 신파적으로 대놓고 슬픈 영화들보다 더 충격적이고, 더 애잔한 이 언밸런스한 분위기의 위화감 때문이랄까, 이 영화의 장르는 일견 코미디라고 구분되어 있지만 결코 코미디 영화는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달리, 영화가 담고 잇는 메시지들 또한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정치와 차별을 향한 풍자, 당시 시대상의 문제점과 인간의 인간을 향한 억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나타내는 장면들. 그러나 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구성하는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삶을 대할 때에 유머와 긍정이 어떻게 인생을 아름답게 조명하는지를 신비로운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딱히 무슨 대단한 철학적인 방식으로 은유한다기보다, 순수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웃음으로 삶을 승리하는 비결, 이것은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독일군에 붙잡혀 끌려가는 '귀도' (다음 발췌)

  '귀도'의 웃음 방향은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한다. 그는 자신이 아닌 아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웃고, 웃긴다.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아들에게 주기 위해서 웃고,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를 웃음을 통해 선사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역사를 다루는 영화도 아니고, 파시즘과 미국의 대립을 이야기하는 영화도 아니다. 전쟁을 희화화하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다분히 휴머니즘적이다. 도무지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극단의 환경 속에서도 따뜻함과 행복을,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메시지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 결국 '희생'이다.

귀도가 마지막으로 조슈아에게 처형당하러 가면서 보내는 세상 가장 슬픈 '윙크'(다음발췌)

  인간의 삶, 인생은 희로애락이 다양하게 얽혀서 때론 달기만 할 뿐만이 아닌 맵고 쓰고 짠맛을 느낄 때에 뭐라 형용할 수 없지만 그 신비로움들로 인해 아름답게 느껴진다. 심지어 아무리 둘러봐도 앞이 캄캄한 죽음의 절망 앞에서도, 진정 보아야 할 것을 보는 사람은 그 아름다움을 본다. 곧 다가올 죽음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희망을 가진 사람뿐이다. 이 비극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곧 끝나 어둠은 사라지고 빛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그 극단적이기까지 한 희망. 그들의 시선은 현실 속 눈에 보이는 현상을 향하지 않는다. 그 속에 숨겨진, 보이지 않지만 보아야 할 무언가를 본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성인 된 조슈아는 고백한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지만, 제 아버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지요. 아버지가 희생한 이야기. 아버지가 주신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까지 아들에게 웃으며 윙크를 날릴 수 있는 아버지가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남자라면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버지'라면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부모라는 존재는 위대함을 넘어서는 존재이니까. 세 가족의 단란하고 행복했던 한 장면을 기억하며 글을 마감하고 싶다. 아마도 사형장으로 가는 귀도의 머릿속에도 이런 장면이 가득하지 않았을까, 그랬길 바란다.

세 가족의 행복했던 순간 (다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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