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줄거리를 일단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22세기 미래의 어느시점. 세상이 멸망한 후에 물과 기름을 손에 넣은 먹이사슬 가장 꼭대기에 자리하게 된 '임모탈'이란 자의 손에 거리를 떠돌던 로드파이터인 '맥스'가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임모탈의 독재에 반발하던 사령관 '퓨리오사'는 임모탈에 의해 착취를 당하던 여성들을 데리고 탈출을 한다. 이를 뒤쫓기 위해 나선 사람들과 도망치는 자들간의 치열한 추격전을 그린 영화이다. 이렇게만 보면 잡히거나 잡히지 않거나 둘 중 하나로 종결되는 시시한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반전은 바로 '파라다이스'의 존재 여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만 가면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해결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파라다이스의 '부재'를 알고는 처음에는 허탈해 하고 실망감을 느끼게 되지만 결국에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동기로써 '파라다이스'라는 의미는 또 한번 작용하게 된다. 도구화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이전과 달리 스스로 결정하는 능동적인 삶을 살기위해 나선다는 점에서 변화가 보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영화를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에 있다.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독재자의 재산 중 하나로 어두운 금고안에 갇혀 그저 아이를 생산하는 '브리더'의 역할만을 하던 여성들이 퓨리오사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자신들의 손으로 '정조대'를 끊어 버리는 일이었다. 약자로서 억압을 받고 자유의지를 강탈 당한 삶을 살던 여성들의 주체성을 스스로 찾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하겠다. 거기에다 임모탈의 독재 아래 생활을 하던 '워보이'라는 남자들은 기계의 일부와 같은 '부품'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 중 '눅스'라는 자는 명령이나 미션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임모탈의 독재에 맞서게 되고 스스로 '희생'을 선택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낸다.
감독인 조지 밀러는 원작인 1980년 '매드맥스 1'을 연출했고 35년이 지난 시점에 분노의 도로를 연출하였다. 이전의 영화에서도 그러했지만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연출한 것 같은 자동차 액션씬이 이 영화의 백미다. 사실 이 시리즈가 아주 예전 부터 흥행했었고, 개봉 당시에도 많은 이슈를 가져 왔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CG를 최소화하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액션장면을 담아 내었다. 뿐만 아니라 개성이 엄청 강한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기에 잘못하면 오합지졸처럼 느껴질수도 있었지만 각자 잘 표현해낸 연기자들 또한 매우 훌륭했다. 우직하고 카리스마 있는 맥스역의 '톰 하디', 소모되는 부품같은 삶에서 자아를 찾는 신인류인 눅스역의 '니콜라스 홀트',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임모탈의 사령관이자 반란을 일으키는 퓨리오사역의 '샤를리즈 테론'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배우가 하기 힘든 삭발에 매우 강인한 여전사의 이미지를 위한 거친 분장까지 모두 소화해 낸 그녀의 열연에 박수를 보낸다.
아주 단순한 플롯으로 인해 뻔하게 흘러갈 수 있었음에도, 이 영화는 기존의 영화들과 굉장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에 이런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디스토피아가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인 것과 달리, 분노의 도로는 매우 다채로운 색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 채 두 시간 내내 이어지는 추격장면과 화려한 볼거리, 인상적인 시퀀스들은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거대한 스케일과 몰아치는 굉장한 속도감, 화려한 묘기와 같은 액션, 시원한 불꽃이 어우러져 관객들이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화려한 액션 시퀀스가 플롯에 집중하게 만들어 준다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 플롯을 탄탄하게 뒷바침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등장인물들의 배경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태도와 언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각각의 캐릭터가 드러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인물들에게 공감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영화에서는 지속적으로 '기계'와 '생명'이라는 소재가 반복적으로 등장을 한다. 임모탈의 무리들은 '기계'를 숭배를 하며 그 에너지원으로 사용을 하고 자신들을 기계를 움직이는 '부품'으로만 여긴다. 죽기전에는 은색 스프레이를 입에 뿌리며, 그들이 가고자하는 파라다이스인 발할라는 금속으로 빛나는 곳이다. 반면 주인공인 퓨리오사 일행은 '생명'을 받든다. 이들은 물을 찾아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 떠난다. 죽는 순간까지도 '씨앗'이 담긴 가방을 놓지 않으려 하고, 그들의 최종 목적지 역시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는 곳이다. 임모탈의 손아래 있을떄와는 달리 눅스는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맞을 때 은색 스프레이를 입에 뿌리지 않는다. 대신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조지밀러 감독의 다른 작품을 보지 못해서 이러한 감독의 생각들이 담긴 장면들이 다른 그의 영화에서도 보이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에는 많은 메세지가 담겨 있다. 그것이 환경에 관한 것이든, 강력한 페미니즘에 관한 것이든, 다만 그것이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메세지가 아니라 감독 본인의 평소 소신이 자연스레 영화에 묻어나온 것이기에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편안하다. 화려한 볼거리와 액션 속에 담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존엄성을 가지고 대해야 할 여성에 대한 감독의 진지한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이다. 그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인류에게 중요한 메세지를 던지는 진지한 영화라 하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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