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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생태계를유지하는원리.설국열차(Snowpiercer.2013)

by 꿈꾸는구름 2019.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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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메인 포스터 (다음 발췌)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다음 발췌)

  제작 당시부터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영화는 매우 드물다. 그 대상이 감독이 되었든 배우들이 되었든 엄청난 팬덤이 아니고서는 그러한 이슈가 생성되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이라는 기대감과 유명 헐리우드 배우들의 출연으로 두 가지 기대감을 모두 충족한 상태에서 제작된 영화이기에 초반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영화였다. 결과적으로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독특한 세계관과 이야기, 명배우들의 명연기가 있었음에도 기대만큼의 관객과 평단 양쪽에서 호평을 받지는 못했으나 영화사에 남을 매우 독특한 영화 한 편이 탄생했다. 봉준호 감독만이 해낼 수 있는 영화였으나 담아내려한 메시지가 너무 많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 (다음 발췌)

  인간 스스로가 저지른 참사 이후, 살아남은 인류는 지구를 무한대로 도는 열차에 몸을 싣고 작은 지구를 형성한다. 머릿칸에 해당하는 엔진과 무임승차를 해서 짐승들처럼 대접을 받는 꼬리칸까지, 달리는 열차는 인류의 진화와 발전을 기나 긴 열차 안에 그대로 담아낸다.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은 지구에 생존해 있던 인류가 그러했듯이 생태계(열차안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신경을 쓰며, '균형(balance)'이 위협받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를 보호한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꼬리칸의 사람들은 일종의 '혁명'을 일으키려 계획을 세우고 시도를 하지만 이러한 '혁명'은 열차가 달리기 시작한 이래로 몇 차례 표면적인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동물과 같은 대접을 받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들은 '혁명'을 모의하고 이를 계획에 옮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혁명을 이끈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열차의 가장 앞 머릿칸(엔진)에 이르러 '윌포드'를 만나지만 그에게서 들은 진실은 그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열차의 관리자 메이슨 (틸다 스윈튼) (다음 발췌)

  그가 마주한 진실은 열차를 설계하고 엔진을 관리하는 '윌포드(에드 해리스)'는 꼬리칸의 정신적 지주인 '길리엄(존 허트)'과 친구인 관계이며, 그 둘은 서로 긴밀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커티스의 혁명도 사실은 이 둘에 의해 짜인 시나리오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균형'을 위해 열차내에 인구수를 조절해야 했으며, 인구 감소를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바로 '혁명'을 이용해 서로를 죽임으로써 인구를 감소시키는 방법이었다. 열차 내에 갈등의 주체가 되는 인물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백인'들이다. 열차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사람, 열차의 균형을 위해 보호하려는 사람, 꼬리칸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사람, 많은 인종이 모인 꼬리칸에서도 리더가 되는 사람. 모두가 백인들이다. 이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열차가 작은 '지구'의 역사라고 서두에 얘기했듯이 지구의 역사에서 주체가 되는 인종은 대부분이 백인이었다. 미국이라는 강력한 주체가 있는 현대의 세계구조도 그러하고. 봉준호 감독은 이를 풍자적으로 그려내려 했을 것이고, 이를 영화의 등장인물을 통해 자연스레 나타내었다. 

꼬리칸의 커티스를 돕는 에드가 (제이미 벨) (다음 발췌)

  그리고 커티스를 포함한 꼬리칸의 사람들은 꼬리에서 머릿칸으로 열차 내의 '전진'만을 목표로 하고 나아가지만, 보안책임자인 '남궁민수(송강호)'는 열차의 옆문을 열고 나가자는 제안을 한다. 즉 '종'으로의 방향성을 '횡'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물론 열차의 밖에는 여전히 매우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는 있지만 '종'으로의 이동이 결과적으로 어떠했는지, 남궁민수는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횡으로의 방향을 제시한 게 아닌가 싶다. 영화의 결말에는 전복된 열차 안에서 두 명의 아이(동양인과 흑인)가 열차의 옆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말이다. 모두가 죽은 뒤 남아있는 두 아이에게 희망을 걸기에는 매우 도박적이지만 작은 희망을 남겨둔 것으로 본다.

신비로운 소녀 요나 (고아성) (다음 발췌)

  이 열차는 하나의 공동체이자 국가로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기를 각각의 열차칸마다 그 열차 칸의 구성원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생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자기 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바로 과거의 고대시대나 중세시대에 존재했던 '계급사회'를 말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21세기 현대 시대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에는 사회계층을 뜻한다. 열차에 등장하는 군인들은 오늘날의 정부가 치안유지를 위해 시행하는 '공권력'을 뜻한다. 열차칸을 앞으로 지날 때마다 만나게 되는 영화의 배경은 앞서 밝힌 대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반 서민', '중산층','상류층'등 사회의 각 계층을 나타낸다. 마지막 열차칸에 있던 하층민들이 열차 제일 앞칸으로 전진하는 것은 일종의 '신분상승'과 사회질서를 바꾸려는 '사회혁명'을 하고자 하는 시위 형태로도 볼 수 있다.

꼬리칸의 정신적 지주 길리엄 (존 허트) (다음 발췌)

  윌포드의 칸에서 그동안 아이들을 데려온 것이 열차의 단종된 부품을 대체하기 위함이었다는 것과 꼬리칸의 사람들이 그동안 식량으로 먹어왔던 단백질 블록 안에 적혀있던 메시지들은 반란을 주도하여 '균형'을 되찾으려 했다는 길리엄과 윌포드의 계략이었다는 사실을 마주한 커티스는 허탈함을 맛본다. 윌포드의 제안에 자신이 스스로 열차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순간, 엔진 속에서 부품이 되어버린 아이를 보게 되고 그는 과거에 하지 못했던 희생을 하게 된다. 커티스가 남궁민수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하며 자신은 길리엄처럼 팔을 자르는 희생을 할 수 없었기에 리더가 될 수 없다 말하지만 결국 그의 팔이 잘리는 희생을 통해 부품이 되어버린 아이를 구해내는 것으로 리더가 된다. 어쩌면 결말부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영화 전반에 걸친 정신을 마무리하는 장면이다.

엔진관리자이자 절대자 윌포드 (에드 해리스) (다음 발췌)

  많은 사람들이 오해와 실망을 하는 부분이 역시나 이 장면인데, 윌포드의 뒤를 이어 리더가 되기로 선택한 커티스가 열차를 멈추게 하고 남은 사람들마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영화가 내내 이야기하던 부분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만한 것이 영화는 반란을 시작하기 직전의 상황만을 제시하며 근본적으로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을 자세히 서술하지 않기 때문에 왜 커티스가 그토록 앞으로 전진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의미가 불분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남궁민수와 커티스의 대화를 살펴보면, 커티스는 남궁민수의 말을 끝까지 믿지 못하는 것 같지만 자신에게 아이들이 부품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요나(고아성)를 보고 남궁민수를 믿어 그의 의지를 실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열차의 파멸을 가져온 것이 커티스의 행동이지만, 끝내 그의 의지는 남궁민수의 뜻을 이어 주기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가 남궁민수를 믿은 이유는 영화의 의식을 상징하기 위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열차밖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남궁민수 (다음 발췌)

  결말부에 있어서의 내용 자체는 영화만 보고서도 간단히 해석되긴 하지만, 커티스의 행동 동기를 비롯해 왜 결말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확실한 건 [스팀펑크] 장르의 감성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짚어내려고 하는 점은 맞지만, 그렇다면 커티스의 반란을 이끌어낸 사회의 동기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폭파된 열차 속에서 살아남은 요나와 티미는 바깥세상에서 북극곰과 마주치게 된다. 북극곰의 등장에 대한 해석이 많은데, 이는 남궁민수와 커티스의 대화를 참고하면 모두 해결이 된다. 바깥은 빙하기가 끝나가는 시점이며 결국 북극곰은 인류가 외부세계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표현한다는 것을 말이다. 북극곰이 등장하며 그 앞에 놓인 흑인과 황인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최초의 인류로 표상되는 존재들이라는 점이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반복하며 문명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까지 의미한다. 

설국열차의 유일한 생존자인 요나와 티미 (다음 발췌)

  영화의 스토리 전개에 비해 결말부의 다소 충격적인 전개를 통해 여러 가지 여지를 주는 영화이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고, 그렇기에 어떠한 해석이 맞는다고만 볼 수는 없다. 다만 전반적인 면에서 볼 때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을 끌어내기 위해서 최후에는 열차가 폭파된 것이며, 이후 북극곰이 등장하는 것은 희망을 상징함과 동시에 현대 사회의 비판과 구조주의의 모순 등 다양한 해석을 위해 만든 장치가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는 모든 영화가 그러하겠지만 감독이 무엇을 의도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보는 관점에서 영화 전반의 의미를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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