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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고전을뛰어넘어.나이브스아웃(knives out.2019)

by 꿈꾸는구름 2019.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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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메인 포스터 (다음 발췌)

  추리물의 '클리셰'를 보자면 이렇다. 상속해 줄 유산이 많은 엄청난 부자나 거물급의 죽음, 닫혀있는 한 공간, 죽은 인물과 연관되어 있는 수많은 주변 인물들이자 용의자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뛰어난 탐정이나 수사관 등 오랜 시간 추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건들이다. 예시한 대부분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모색되고, 또한 그 조건하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관객이나 독자들도 이야기의 전개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만 본다면 '나이브스 아웃'은 추리물로서의 기본적인 '클리셰'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추리 영화이다. 하지만 연출과 각본을 겸하고 있는 감독인 '라이언 존슨'은 이러한 기본 틀 위에 어느 고전 추리물에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을 영리하고 치밀한 시나리오를 들고 나타났다. 사실, 전작인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만을 놓고 본다면 동일한 감독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 정도의 '놀라운' 이야기를 굉장히 매력적으로 풀어놓는다. 구조가 허술한 추리물의 경우 이야기의 떡밥을 깔아 두고 미처 회수하지 못해 허둥대는 경우가 허다한데, 뭔가 막 줍지 못하고 성급하게 끝낸 이야기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고 게다가 연출마저 깔끔하고 매끄럽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 (다음 발췌)

  개인적으로는 평소 추리물에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에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영화였다. 하지만 포스터를 보니 왠지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이나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같은 급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 같아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화려한 출연진까지, 그냥 두기엔 왠지 아까운 영화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찾아보았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냥 지나쳤다면 굉장히 아쉬웠을 영화이다. 아니 시나리오만 두고 본다면 올해 본 영화 중에 최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바로 시나리오이다. 130분이라는 다소 긴 런닝타임의 영화이지만 지루하다거나 길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인 '나이브스 아웃 (Knives Out)'이란 단어가 생소해서 일부러 뜻을 찾아보았는데 사전적인 뜻이 '칼을 꺼내어 휘두르다'이다. 영화를 보다보니 제목을 정말 절묘하게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가족이라 운운하며 감싸던 '트롬비 가족 일가'가, 한순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상속 문제로 아버지의 간병인이자 이민자 출신의 약자인 '마르타(아나 디 마르아스)'를 향해 날 선 시선을 던지는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가진 위선과 가식에 대한 생각들이 '칼을 꺼내어 휘두르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할란(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생일파티에 모인 가족들 (다음 발췌)

  베스트셀러이자 미스테리 작가인 '할란(크리스토퍼 플러머)'이 85세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된다. 그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경찰과 함께 탐정 '브루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이 파견된다. 그의 생일로 인해 모인 가족들은 모두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되지만 그들의 알리바이는 모두 명확하다. 경찰의 발표와는 달리 '자살'이 아닌 '살인'으로 사건은 진행되고 모든 가족은 서로를 의심하게 되면서 범인을 찾기 위한 탐정의 추리가 시작된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이자 영리한 점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사건의 해결사로 등장한 '탐정'이 아니라 '할란'의 간병인인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로 설정을 했다는 것이다. 탐정인 '브루아'가 가지고 있는 사실 이상의 정보를 관객에게 쏟아주면서 다른 인물인 '마르타'를 부각한다. 이 부분이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다. '마르타'는 정말로 호감이 가는 착한 사람이라서 관객들이 주인공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사람이지만, 이 퍼즐의 미스터리에서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묘해서 꽤 흥미로운 결과가 일어난다. 관객을 이중적으로 분리되게 만들다가 결과적으로는 상승작용을 일으켜 영화에 도움이 되게 만든다. 

'할란'의 딸인 '린다(제이미 리 커티스)' (다음 발췌)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살해 된 '할란'은 그의 유산을 모두 간병인인 '마르타'에게 남기는 유서를 작성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모두들 마르타에게 등을 돌려 그녀를 의심하고 사실을 추궁한다. 하지만 마음씨 착하고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하는(!) 마르타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 사실 범인은 영화를 보다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리 의외의 인물은 아니다. 제일 범인 같은 느낌이 들었던 그 사람. '할란'의 망나니 손자인 '랜섬(크리스 에반스)'이다. 그는 유산 상속자가 '마르타'라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되고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사건을 조작한다. 마르타가 일반인처럼 유혹에 빠져 실수를 하게 되면 그녀가 범인으로 몰려 유산을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꾸미지만 '마르타'는 일반인을 넘어 선 선한 사람이었기에 '랜섬'이 꾸민 덫에 걸리지 않고 막대한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범인은 어찌 보면 그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간병인이자 영화의 주요인물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왼쪽)' (다음 발췌) 

  영화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더불어 탄력있는 편집을 자랑하며 퍼즐 미스터리물의 갑갑함을 효과적으로 없애고 있다. 관객에게 사전에 많은 정보를 전달해 주는 친절함도 아울러 발생할 수 있는 체증을 없애준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대거 출연함으로 인한 복잡함을 줄 수 있는 내용임에도 각 인물들의 소개도 적절하게 이루어져 인물들의 관계나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없었다. 대신 주연급의 화려하고 막대한 조연들이 대거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효과적이고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그저 그런 주변 인물들로 영화의 겉을 맴돌다가 소비되기에는 아까운 배우들인데 말이다. 특히나 '린다'역의 '제이미 리 커티스'나 '월트'역의 '마이클 섀넌'의 경우 비중을 조금 더 주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나니 손자 '랜섬 (크리스 에반스)' (다음 발췌)

  이 영화는 그저 탐정 추리극일 뿐 아니라 현재의 미국사회를 풍자하는 이야기 또한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있다. 유언장 낭독회 앞에 모인 '트롬비(발음 유의)' 가족들은 평소 가족이라 말하면서 아끼는 척하지만 '마르타'가 어느 나라 이민자 인지도 알지 못한다. 사실 그녀는 어머니가 불법체류자일 뿐이지 정작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인데도 말이다. 자신들(미국인)도 이민자들이면서 이민자들을 멸시하고 거부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비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미국 사회의 현재 리더 격인 '그'의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레 '그'가 떠오를 이야기들을 굉장하게 늘어놓는다. 그런 위트에 더한 파티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반이민정책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그 사람'을 떠오르게 한다. 수많은 이민자들을 박대하고 있는 미국의 현재, '그'인 트럼프 정부도 비판하면서 건방진 미국의 상류층도 함께 비판하는 효과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후속작이 만들어질 것 같은 결말을 맺었는데, 후속작이 나온다고 해도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지속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감독이 연출하고 시나리오를 썼던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 이전의 작품이 '루퍼'였다. '스타워즈'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지 원래 이야기에 능한 감독임에 틀림없다. 우연히 나온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얘기다. 

탐정인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다음 발췌)

  평소 잘 살피는 편은 아니지만 '로튼 토마토' 신선 지수가 무려 99%인 영화이다. 이 수치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 유력시 되는 '기생충'과 같은 수치이며, 아가사 크리스티의 원작 소설을 충실하게 스크린에 옮긴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60%, 스릴러 장르로는 호평을 받았던 '나를 찾아줘'도 87%에 머물렀었다. 평소 스릴러나 추리물에는 특히나 박하게 점수를 주는 편인데 그 정도로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영화인 모양이다. 북미에서는 이미 제작비를 충분히 넘긴 흥행 수익을 내고 있으며 '겨울왕국 2'에 이은 2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겨울왕국2'와 '백두산'에 밀려 개봉관이 적은 이유로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는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분명 매우 아까운 영화이다. 영화의 홍보문구인 '지금 겨울왕국을 볼 때가 아니다'가 거짓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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