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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지키자이영화.지구를지켜라(2003)

-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메인 포스터 (다음 발췌)

 

  영화의 연출자인 '장준환 감독'은 지금 생각해도 많이 특이한 분이셨다. 함께 영화 후반 작업할 기회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지만, 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장준환'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생각이 다른, 엉뚱한, 비범한 혹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지구를 지켜라 작업 중에 대화를 나누다가 차기 영화에 대해 잠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 15년전 이야기니까 해도 되겠지... ) 다음 영화의 스토리는 '인어를 통조림으로 만드는 이야기'라고 말하며 씩~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웃음이 오싹하거나 무서운 웃음은 아니었고,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웃음이었다고 기억되는 게 참 아이러니했지만 말이다. 인어 통조림... 이라니... '지구를 지켜라' 예고편과 DVD 후반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때문에 이 영화는 적어도 20번은 본 것 같다. 오로지 '일'로써... 하지만 개인적인 재미와 호기심도 많았음을 고백해본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관객 '7만'이라는 아주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영화였다. 신하균, 백윤식 이라는 신인감독이 캐스팅하기 쉽지 않은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웠음에도 영화는 처참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여러 매체에서도 이미 다루었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도 이 영화를 망친 주범은 포스터와 이를 만들어낸 홍보팀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범우주적 코믹납치극'이라는 코믹영화로 소개를 하다니. 'B급 정서'가 가득한 철저한 '컬트 요소'를 가진 'SF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포스터와 홍보영상(그러고 보니 홍보영상을 제작한 내 몫의 불찰도 있겠다.)을 보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모두 뜨아~ 했을것이다. 포스터와 예고편을 보고 기대했던 코믹은 간데없고 기묘한 영화풍에 엉뚱 발랄한 스토리로 진행되는 영화였으니 말이다. 참으로 난감했겠다.

 

연기력의 절정을 보여줬던 신하균 (다음 발췌)

 

  이 영화의 주인공인 '병구'역은 '신하균'이 연기했다. 이전 영화인 '킬러들의 수다', '복수는 나의 것', '묻지 마 패밀리' 등의 영화로 조연에서 주연으로 올라 선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 배역을 맡아 열연을 보여주었다. 평범한 듯 보이면서도 엉뚱하고 사이코적인 모습까지도 보여 줘야 하는 배역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모습들이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다소 연극적인 연기톤에서 영화적인 연기로 변모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몸에서 힘을 뺀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연극처럼 일관된 힘을 실은 게 아니라 힘을 넣고 빼고를 장면과 시퀀스마다 조절함으로써 비로소 영화에 걸맞은 연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인상깊었던 그 '눈빛'은 여전히 영화에서 살아숨쉬고 있다.  

 

그렇다. 병구가 외계인으로 지목한 '백윤식'은 진짜 외계인이었다 (다음 발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병구가 외계인으로 지목한 강만식 사장 역할의 '백윤식'은 진짜 외계인이다. 백윤식은 삭발까지 감행하면서 이 영화에서 열연을 보여주었는데, 이런 배우들의 열연과 기발한 장준환 감독의 B급 정서가 가득한 재기 발랄한 영화였으나, 관객의 오해(?) 아닌 오해로 저주받은 걸작이 된 게 너무나도 안타깝다. 물론 ' 태극기를 휘날리며'나 '7번 방의 선물' 같은 영화들도 있어야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지구를 지켜라'같은 실험적인 영화가 많아져야 우리나라 영화 풀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은 언제나 소중하니까. 영화는 또한 사회비판물로써 방대하고 날카로운 칼날을 세운다. 영화는 대를 이어 없어지지않는 인간의 폭력성과 복제인간에 대한 문제, 대기업 간부의 갑질, 사회 소수자의 보호 등 사회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문제점들을 고루 담고 있다. 이렇게 하고자 하는 말이 많다면 당연히 산만해지기 마련인데 반전과 함께 이 모든 것들을 솜씨있게 한 바구니에 담아낸 감독의 연출력은 신인의 그것이 아닌것처럼 느껴진다.

 

미술, 분장, 특수효과도 매우 훌륭하다 (다음 발췌)

 

  가장 인상적인 것은 폭력의 순환을 강조한 병구와 강사장의 관계이다. 병구는 갑부인 강사장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고통을 받고 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사회 강자의 갑질에 피해를 받은 병구에 대한 동정과 갑부에 대한 분노로 영화를 몰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분노하고 폭력을 가하는 광기어린 모습을 보여준다. '병구'는 '강사장'의 악행으로 인해서 피해자가 되었지만 결국 그 자신도 똑같이 사회적 강자인 갑부에 대한 분노로 그를 외계인으로 몰아서 죽이는 악행을 되풀이 한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그 폭력은 또 다른 황당한 폭력을 양산한다는 것이 이 영화가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세지이다. 또 영화는 많은 명작영화들을 오마주하고 있는데, '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길','유주얼 서스펙트','싸이코','블레이드런너'등의 영화들을 곳곳에서 오마주하고 있다. 비슷한 장면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이 영화가 위대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비판과 서스펜스와 기발한 오마주로 신나게 내달리다가 후반부에 급격하게 흐름의 브레이크를 걸면서 정서적인 울림을 주는 장면들이 등장을 하는데 그저 신파로 남지 않고 깊은 감동의 뭉클함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화 내내 보여진 병구의 기괴하고 모호한 이미지들이 중첩이 되어 후에 그 미스테리가 풀리게 되었을 때 '병구의 인생이 너무나 괴로웠겠구나'라는 공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병구의 이해하기 힘들었던 살인 행각(강사장 이전에 많은 사람들을 살인했다는 암시를 준다)과 외계인 사냥이 그저 병구가 미쳤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지구를 지키는 '병구(신하균)'와 '순이(황정민)' (다음 발췌)

 

  마지막에 병구의 손에 물파스를 쥐어주는 우리의 젤소미나, 순이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병구에게 말한다. '아무도 없어, 오빠가 지구를 지켜야돼' 하지만 병구도 끝내 지구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한다. 이 영화를 완성시키는 건 바로 결말이다. 영화 결말은 '이 별은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는 안드로메다의 왕자인 강사장에 의해 결국 지구가 폭파되고 끝이나지만, 지구가 사라진 텅빈 공간을 보며 짧지만 긴 여운을 가질 수 있었다. 강사장이 진짜로 외계인이고 병구가 그동안 '미친'사람처럼 주장해 왔던 일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반전'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 영화가 내내 보여주고자 한것은 지구란 행성과 인간이란 동물은 더이상 희망이 없으며 서로에게 피해와 상처만을 주는 존재와 장소라는 것이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흐르던 'OVER THE RAINBOW'는 이 하찮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병구에게 마지막 위안을 준다. ... 14년 후, 그때 감독이 병구에게 주었던 위안처럼, 장준환 감독은 2017년 영화 '1987'로 관객 723만 명을 동원한 감독이 되었다. '지구를 지켜라'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신인감독이었기에 제작이 가능했던 영화'가 맞는게 사실이고, 동시에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이라는 평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다양성을 가진 영화들이 제작되던 분위기에서 지금은 조금 경직된 듯한 한국영화계에 이런 영화들은 지켜져야 할 영화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니, 장준환 감독이 만든 '인어 통조림' 영화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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