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영화리뷰]마음을움직이게하는것은.동사서독(東邪西毒.1994)

by 꿈꾸는구름 2019. 12. 13.
반응형

-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출연진들을 보고 가슴설레였던 포스터(다음 발췌)

  1994년에 제작되어 우리나라에는 1995년에 개봉한 동사서독. 1994년 베니스 영화제 예술성취상, 촬영상을 수상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로 제작기간이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절제된 언어와 상징적인 색감을 이용하여 인간의 감정을 예민하게 표현한다. 영화를 주시하고 있지 않으면 어느 부분을 놓치게 되어 전체적인 내용의 이해가 어렵게 된다. 왕가위 감독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다루는 핵심 주제는 '고독'과 '사랑의 아픔'일 것이다. 무협영화의 외피를 입은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내내 실패한 사랑과 그로 인한 기억의 아픔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소개하려면 영화의 첫 장면을 언급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담은 영화의 첫 장면과 대사(다음 발췌)

  영화는 첫 자막으로 시작된다. 자막의 배경에는 흐르는 듯한 색채의 구름이 물결처럼 출렁이며 구름을 가린 사막의 바람 속으로 흙먼지를 닮은 색의 옷자락이 날리면서 서늘하고 쓸쓸한 기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바람도 아니요. 그대의 마음이다.' 영화의 주제와 관통하는 첫대사는 이렇게 강렬하게 준비 안된 관객에게 다가온다. 사막을 가로질러 말을 타고, 구양봉(장국영)의 친구 황약사(양가휘)가 '취생몽사'라는 술을 가지고 찾아온다. 그는 경칩이 되는 시점에 한 번씩 구양봉을 찾아오는 오래된 친구이다. 어느 여인에게서 받았다는 '취생몽사'는 마시면 기억을 잃어버리는 술이다. 낯선 것을 싫어하는 구양봉은 황약사가 건넨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인간은 잊어버리지 못하는 기억 때문에 번민을 한다." 함축된 언어로 시인은 가슴속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풀어간다. 동사서독에서도 그런 함축된 영상으로 가장 절절한 인간의 고통인 사랑을 영상으로 표현하였다는 영화평이 많았다.

구양봉 역의 '장국영' (다음 발췌)

  영화는 구양봉에게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두 개의 인격으로 나뉜 모용연/모용언(임청하), 나귀와 달걀만으로 살인청부를 부탁하는 완사녀(양채니),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검객인 맹무살수(양조위), 맨발의 무사 홍칠(장학우)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찾아온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개 사랑에 의한 상처를 받은 이들이다. 모용연/모용언은 사랑에 배신당해 인격이 두 개로 분리가 되었고, 맹무살수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에게 아내를 뺴앗기고도 눈이 완전히 멀기 전에 그녀를 다시 보고 싶어 한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살인청부 알선 일을 하는 구양봉 또한 사랑에 의해 상처를 받은 인물이다.

이중인격의 모용연/모용언(임청하) (다음 발췌)

  무협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선과 악의 대결이 없으며 선의 승리도 악의 패배도 없는 삶의 쓸쓸함과 허무를 사막에 부는 바람과 흘러가는 구름으로 처리하였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은 바로 '홍칠'이다.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그는 단순하고 순진한 검객으로 자신의 신념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중 무언가에 가장 얽매이지 않는 이가 바로 홍칠이다. 그는 여러 면에서 구양봉과 정반대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홍칠은 냉소적인 구양봉은 절대 하지 않을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손가락 하나를 잃는다. 그리고는 구양봉에게 자신은 그를 닮아가기 싫다고 말한다. 또 검객이 되어 천하를 돌아다니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 구양봉과는 달리 홍칠은 아내와 함께 다니겠다며 구양봉의 곁을 떠난다. 사랑을 잃은 아픔을 가진 인물들이 주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결을 달리하는 인물인 홍칠이 시사하는 바는 쉽게 지나칠 수는 있지만 매우 크다. 사랑을 간직하는 법, 사랑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관객들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맹무살수 역의 '양조위' (다음 발췌)

  구양봉은 백타산을 떠나 사막 한가운데에 살인 중개업자로 정착을 했지만, 마음은 백타산의 형수(장만옥)에게 가 있다. 황약사(양가휘)는 구양봉의 형수를 좋아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그 공허함을 모용연 등 다른 여인들로 채우려고 한다. 모용연은 황약사가 다른 여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자아가 분열된다. 구양봉 형수는 구양봉에게 만만하지 않은 여자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형과 결혼해 놓고 죽을 때까지 구양봉을 그리워한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잊기 위해 술잔을 들지만 술에 취하면 취할수록 그리움은 더 짙어진다.

구양봉의 형수인 자애인 역의 '장만옥' (다음 발췌)

  "취생몽사는 그녀가 내게 던진 농담이었다.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녀는 전에 늘 말했었다. 가질 수 없더라도 잊지는 말자고."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형수가 몇년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황약사가 가지고 온 취생몽사라는 술은 사실은 그녀가 구양봉에게 준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구양봉은 그녀가 준 취생몽사를 마시지만 과거를 잊게 해 준다는 말과 달리 기억은 더 생생해질 뿐이다. 그는 결국 사막의 집을 불태우고 고향인 백타산으로 떠난다. 

순수한 검객 홍칠역의 '장학우' (다음 발췌)

  이 영화의 좋은 점은 지독한 사랑에 취한 군상을 감각적으로 덤덤하게 그려냈다는 것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 중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정신분열이 나고, 누군가는 평생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는 병약해져서 죽는다. 여러 모습을 보며 사랑에 아팠던 기억은 위로를 받는다. 화면 가득한 황량함과 절절함은 영화 속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분위기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 그림 같은 화면의 뛰어난 영상미는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이 현대미를 전통성에 도입시켜 기존의 사극이나 고전물에 대한 편견을 바꾸었다면, 영화음악은 주인공들이 지니고 있는 감정의 허무를 극대화시킨 '진훈기' 감독의 이채로운 이력이 눈길을 끌게 한다.

도화삼랑역 유가령 (네이버 발췌) 

  왕가위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의 영상미와 영화내내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취생몽사라는 술은 기억, 그리고 사랑의 속성을 잘 표현한 '메타포'라고도 할 수 있다. 잊으려고 하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감정, 인간의 번뇌가 기억 때문이라 하지만 결국엔 인간의 거의 모든 감정인 행복과 고통 모두가 기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 속 대사처럼 가질 수 없더라도 잊지는 않는 것이다. 사랑은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결코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술 한잔으로 잊히는 것이 기억이고 사랑이라면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한 감정은 심한 배반감을 느낄 것이다. 

여러군상들의 아픈 사랑이야기 (다음 발췌)

  사막에서 날리는 황량한 바람이 사랑을 잃어버린 가슴의 삭막한 내면을 훑어가듯 붉은 흙먼지를 날리고 있고, 가슴 밑바닥의 절망을 사막의 색을 닮은 붉은 황토색의 옷감으로 삶의 허무를 대신하고 있다. 생의 마지막 시간에서 오래 전의 연인이었던 구양봉에게 보내는 술 취생몽사는 잊어달라는 여인의 절절함이었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원했고, 황혼의 사랑은 상대방의 행복을 바란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처럼 사막에 살고 있으면서도 사막을 보지 못했다는 구양봉의 대사가 사랑을 잃어버린 가슴속 절망을 담담하지만 매우 깊숙하게 대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1990년대 할리우드 키즈들에게 우상이었던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이라 생각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