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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 동화같은 서부극. 슬로우웨스트(Slow West.2015)

by 꿈꾸는구름 2019.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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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메인 포스터(다음 발췌)

  '서부극판 어린 왕자'라는 이야기를 들은 영화이다. 제목의 '슬로우'가 영화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이 영화는 기존에 보아 온 모든 서부극의 형식을 깬 영화이다. 그래서 낯설지만 또 새롭다. 광야에서 말을 타고 누군가를 추격하거나, 무시무시한 갱들이 출연한다거나, 잔인무도한 원주민인 인디언이 등장하지도 않고, 총을 잘 쏘는 총잡이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스코틀랜드'라는 낯선 곳에서 말 한 마리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와 무작정 '서쪽'으로 가는, 순진무구하다 못해 조금은 부실해 보이는 청년과 그와 함께 하는 사내가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 당시엔 세상 어느 곳보다 무질서하고 무법지대였을 미국 초창기 서부를 가로지르는 '로드무비' 영화로 모든 낯섦이 편안한 친숙함으로 다가오는 영화이다.

수수남 주인공 제이 (코디 스밋 맥피) (다음 발췌)

  '제이'는 16살의 어린 청년으로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무작정 미국으로 혼자서 넘어왔다. 말 한 마리와 약간의 돈, 별다른 짐들도 없이 무법천지인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무작정 '서쪽'으로 향하는 그 앞에 어느 날 숲에서 원주민을 사냥하는 북부군들이 등장하게 되고 위기의 순간 그를 구해주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현상금 사냥꾼인 '사일러스(마이클 패스벤더)'는 처음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제이'에게 길안내를 할 테니 돈을 달라고 한다. 길도 잘 모르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 '제이'는 '사일러스'에게 돈을 지불하고 동행할 것을 수락한다. '사일러스'는 현상금이 걸린 '제이'의 여자 친구 '로즈(카렌 피스토리우스)'를 찾기 위해 '제이'를 이용하려는 것이었으나 '제이'는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제이'를 구해주는 '사일러스' (마이클 패스벤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여정이었으나 둘의 여정은 말 그대로 '슬로우'로 나아간다. 촬영지는 19세기의 스코틀랜드와 미국 서부 콜로라도의 분위기를 모두 만들어 낼 수 있는 '뉴질랜드'였는데, 매우 천천히 진행해나가는 주인공들 뒤쪽으로 흐르는 풍광들도 영화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장대한 자연이 뭐하나 급할 것 없이 그대로 아주 천천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영화의 제작자는 '사이러스'로 등장하는 마이클 패스벤더이다. 감독인 '존 맥클린'과는 감독의 단편영화를 통해 서로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서로 통하는 뭔가가 있었는지 두 편의 단편영화를 함께 배우와 감독으로 제작하고는 장편영화를 찍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둘의 공동 프로젝트로 제작된 이 저 예산 영화의 성공으로 앞으로의 행보에도 많은 관심이 가는 두 사람이다.   

매우 천천히 서부를 가로지르는 '제이'와 '사이러스' (다음 발췌)

  주인공 '제이'는 얼핏 서부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로 보인다. 사랑을 찾아 머나먼 땅으로 혼자 온것도 그렇지만 모든 사물을 대할 때나 사람들을 대할 때는 마치 몽상가적인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가 있는 곳은 잔인무도한 '미국 서부'인데도 말이다. 언제나 위험을 알리는 '사이러스'가 아니라면 그는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른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며 교감을 나누려 한다. 얼핏 매우 위험해 보이는 그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는 데는 처음엔 무리가 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이런 행동과 생각들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장소'와 '현실'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어린 왕자'라느니 '몽상가'라느니 하는 말들은 그저 말들로 남고, '제이'는 누구보다도 강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는 아이, 혹은 소년, 청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확신은 바로 '사랑'이다. 그의 이런 행동은 보는 관객과 마찬가지로 영화에 등장하는 '사이러스'에게도 동의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관객들이 '제이'의 생각에 동의를 해갈 무렵, '사이러스'도 '제이'의 생각과 행동에 순응해가는 모습들을 보인다. 

여러 에피소드를 함께 겪으며 나아가는 두 사람 (다음 발췌)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성장영화'인 이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순진무구한 청년'의 성장기로 보이지만 실상은 '사이러스'의 성장 영화이다. 오로지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제이’의 성격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하지 않고 유지된다. 바로 이 점이 기존의 성장영화와는 결을 달리한다. 일반적인 성장영화의 주인공은 자의나 타의로 원래 있던 곳을 떠나, 조력자를 만나고, 모험을 한 끝에 결여되었던 것을 얻고 귀환하게 되는데, ‘제이’는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냉소적인 인간이었던 사일러스가 제이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삶에서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성장한다. 그렇다면 일관적인 악인 이아고가 오셀로의 변화를 두드러지게 하듯 제이는 사일러스의 변화를 비춰주기 위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이로 하여금 상사병을 앓게 만든 여자친구인 '로즈'(카렌 피스토리우스) 역시 영화 속에서 구출을 기다리는 낡은 캐릭터가 아니며, 그렇다고 어설프게 남성을 흉내 내는 여성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익숙한 설정들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유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  

로드무비이자 성장영화인 '슬로우 웨스트' (다음 발췌)

  19세기 초의 미국 상황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미국의 전초가 된 '동부'의 법이 미치지 않는 19세기의 미국 서부 콜로라도가 배경이다. 자신만만한 백인 영웅과 악랄한 인디언이 나왔던 초기와 달리 서부영화는 점차 인디언에게 온정적인 시각으로 변화하게 된다. '슬로우 웨스트' 역시 예전의 서부영화가 내걸었던 가치들에 대한 회의를 내비치며 풍자적이다. 제작자인 마이클 패스벤더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땅에 대한 것이기도 하며 아메리카 대륙도 하나의 캐릭터가 된다”라고 말해 미국의 역사에 대한 성찰을 암시한다. '슬로우 웨스트'는 한 청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지만 긴 설명을 배제한 채 몇 마디 간결한 대사만으로도 서구인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드러낸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억압과 폭력의 역사도 자연치유가 되길 바라는 모습이다. 

'재이'의 여자친구인 '로즈'(카렌 피스토리우스) (다음 발췌)

  영화의 결말은 '제이'를 알아보지 못한 '로즈'가 '제이'를 쏘게 되고 '제이'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은 '사이러스'가 된다. 영화 전반에 흐르던 안정감있는 모습들과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달리 조금은 충격적인 결말은 당혹스럽게 했다. 서부의 모든 것이 낯선 '제이'의 관점을 대변하듯 영화 전반의 부조리한 분위기는 '제이'의 사랑 플롯에서 보이는 신비롭고 예언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더없이 독특한 웨스턴 무비를 탄생시켰다. 웨스턴 무비에서 접했던 익숙한 것들이 보이지는 않는 영화이지만 그 새로움들로 인해 낯설지 않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제이'와 '로즈'의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영화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지만, 둘의 사랑스러운 포옹과 키스는 보지 못했어도 '제이'의 여정을 통해 이미 많은 것들을 깨달은 영화라는 점을 엔딩이 올라가며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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