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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외로움을위로받다.파이란(Fairan.2001)

by 꿈꾸는구름 2019.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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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서브 포스터 (다음 발췌)

  극장개봉시에는 보지 못했던 영화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요즘 말로 역주행을 하여 입소문을  듣고 늦게나마 본 영화이다. '최민식'과 '장백지'의 연기와 '송해성'감독의 담백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라고 전해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별것 아닌 이야기인것 같았는데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는 가슴속에 먹먹함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멜로의 성격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형식상으로는 자아를 찾아가는 로드무비 같기도 하고, B급 영화의 정서도 가지고 있으면서 당대 유명 배우였던 최민식과 홍콩의 여배우 장백지가 동반 출연한 '블록버스터'급 출연진의 영화이기도 한 여러가지가 뒤섞인 참으로 묘한 분위기의 영화이다. 한국영화에선 보기 드문 형태의 영화로 기억이 된다.

강재역의 '최민식'. 그냥 동네 건달 그 자체 (다음 발췌)

  동네 삼류건달 강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와 위장결혼을 해서 한국에 오게되는 중국인 '파이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상대에 대한 아무런 감정없이 그저 돈이 필요해서 위장결혼을 해주는 강재이지만, 그런 강재를 파이란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에 담는다. 소개소 직원이 전해 준 강재의 증명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한국에서의 고단한 생활에도 꿋꿋하게 버틴다. 그저 착하기만 하고 약하기만 한 그 당시에는 그런 대우를 받았을 것 같은 가난한 중국인의 역할을 장백지는 도회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담백하게 잘 표현해 낸다. 그녀가 지니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시골처녀의 순박한 미소까지도 자연스럽게 연출해 낸다. 이 영화를 통해 여배우 장백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주인공 '강재'역을 연기한 최민식은 마음이 여려서 진짜 깡패는 되지 못하고, 자신의 동기는 두목이 되었지만 암암리에 조직의 가장 막내 취급을 받는 강재는 모두가 자신을 무시해도 세상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그저 작은배를 하나사서 고향에 내려가고 싶은 소망을 가진 남자다. 영화내내 강재는 자신의 속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드러내지 못하는것 같다. 세상이 자신의 감정을 알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자신감은 상실해 버리고 하루 하루 연명하듯 살아가는 자신이 스스로도 한심해 보이는 구석이 많은 것이다. 그의 자존감이란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자신과 동거하는 동생인 '경수(공형진)'를 제외하고 세상에서 마주치는 그 누구라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별 볼일 없는 사내인 것이다.

파이란의 비보를 듣게되는 강재 (다음 발췌)

  스치듯 단 한번 만났던 두 사람은 파이란이 죽음을 맞이해서야 비로소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움을 먼저 품은건 파이란이었다. 낯선 한국땅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던 파이란에게 비록 위장결혼이었지만, 강재라는 존재는 커다란 위안이었고 삶의 버팀목이 되었다. 힘든 한국의 삶을 강재의 증명사진 한장으로 버텨낸다. 하지만 그런 대상이라는걸 전혀 모르고 있었던 강재는 비로소 주검이 되어서야 다시 만나게 되는 '파이란'을 찬찬히 다시금 새겨보게 된다. 파이란이 그랬던것처럼 파이란의 사진을 유심히 보면서 그녀를 다시 되새겨 본다.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졌던 파이란이란 존재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강재앞에 나타났고, 그 이후부터는 강재의 파이란에 대한 그림움이 시작된다. 이미 너무 많이 엇갈려 버린 인연이 되어 버렸지만.

파이란을 찾아가는 도중에 사진을 유심히 보는 강재 (다음 발췌)

  파이란이 강재에게 남긴건 증명사진 한장과 서툰 손글씨로 쓴 편지 한장이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히 강재는 파이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럴수가 있나...? 싶지만.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강재의 캐릭터를 생각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모두에게 무시당하고 멸시받던 강재이기에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땐 자신도 모르게 바닥으로 내려갔던 자존감이 스물스물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강재는 비록 자존감은 사라져 버렸지만 순수한 인간성은 지니고 있었다. 비록 삼류 건달이지만 내면에 순수함이 있었기에 그는 두목이 되지도 못하고, 건달에서도 삼류가 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벅찰 캐릭터인데 남들을 위협해야하는 '깡패'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라니.

파이란의 편지를 읽고 바닷가에서 오열하는 명장면 (다음 발췌)

  강재가 파이란의 장례를 마치고 그녀가 쓴 편지 한장을 들고 강원도 바닷가에 앉아 편지를 다시 읽고는 왠지모를 감정이 차올라 오열을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강재역의 최민식표 연기가 스크린 가득 넘친다. 강재가 오열하는 이유가 '미안함'일지 '후회'일지 '서러움'일지 정확히는 밝히지 않아 알 수가 없지만 어떠한 감정이 되었더라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그리며 차디 찬 이국땅에서 홀로 죽어갔을 파이란을 생각하면 어떠한 감정이었다 해도 모두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세련되지도 계산적이지도 매끄럽지도 않은 영화이지만 오히려 거칠고 투박하고 촌스러워 그들의 순수한 이야기가 가슴에 더 와닿는 영화이다.

매우 세련된 도회적인 이미지의 장백지 '파이란'역. (다음 발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비루하게 살아가던 강재의 외로움과 지인이라고는 전무한 파이란의 외로움이 접점을 이루는 순간, 강재는 새 출발을 결심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심이 굉장히 허무하게 끝을 맺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많은 멜로영화에서 이야기하는 불멸의 사랑, 끝없는 사랑이 아니라 존재의 외로움을 위로하고 격려 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외로움을 어루만지는 송해성감독의 연출력도 과하지 않고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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