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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건너지못한.황해(TheYellowSea.2010)

by 꿈꾸는구름 2019.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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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메인 포스터 (다음 발췌)

  영화 '황해'는 번뜩이는 데뷔작인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과 두 배우 '김윤석' '하정우'가 똑같이 출연하며, 그 감독이 '나홍진'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관심을 끌만한 이슈거리였다. 포스터의 어두운 배경이나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지에 앞서 걸게 되는 기대감은, 아마도 추격자를 인상 깊게 본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 '황해'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 나홍진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준 적나라한 사실감(?)에서 예견되듯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잔인하고, 감추지 않아서 도드라지게 아픈 영화이다. 또 불편한 진실들이 불편하게 튀어나와 저도 모르게 불편해지는데, 그 불편함이 미묘하게 시선을 끌어 쉽게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묘한 느낌의 영화였다. 

구남 역의 하정우 (다음 발췌)

  주인공인 구남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4개의 소주제로 나누어진다. 택시운전수, 살인자, 조선족, 그리고 황해.러닝타임이 160분에 육박하다 보니, 초반에 시작하는 구남의 내레이션을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구남이 매우 단조롭게 이야기하는 '개병(광견병)'에 걸린 개에 대한 이야기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점을 가장 함축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개병에 걸린 개는 미쳐 날뛰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죄 물어 죽인다. 그러다 그 개가 죽어 땅에 파묻으면, 그 개의 시체를 다시 사람들이 파서 먹더라는 이야기.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살아가는 조선족의 비루한 삶이 반영된 이 내레이션은,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꾸준히 반복적으로 가 밑바닥의 삶을 이야기해 준다.

비루한 조선족의 삶 (다음 발췌)

  한국에 갈 비자 마련을 위해 빚을 지게 된 구남은, 택시운전을 통해 번 수입을 저당 잡힌 희망 없는 인생이다. 한국으로 간 아내의 소식은 끊기고, 십중팔구 바람난 거라는 주변의 말을 거부하고 한 귀로 흘리면서도 매일 다른 남자와 침대에서 뒹구는 아내의 악몽을 꾸는. 언제 청소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방안, 크게 걸린 결혼사진 액자의 유리가 깨진 모습이 구남이 정신적인 괴로움에 몸부림칠 때마다 몇 번씩 반복되어 스치는데, 아내의 얼굴 위로 깨어진 유리 금이 이어져 있어 순간적으로 아내가 한국에서 죽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구남(하정우)과 면가(김윤식) (다음 발췌)

  일반인들은 쉽게 접하기 힘든 밑바닥 인생들을 끄집어 놓은 느낌이 유쾌하지 않은 건, 황해라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잿빛 우울함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이어지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수 일도 잘리고, 퇴직금조로 받게 된 돈마저 마작으로 깔끔하게 날린 구남. 빚진 돈을 갚을 길이 없어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 그 돈을 갚아준다는 말에 살인청부까지 손을 대게 되는 것이다. 조선족이라 무시당하고, 돈이 없어 무시당하고, 돈 50만 원에 인생을 저당 잡힌 목숨 값은 한없이 구차하고 비루하다.

조선족 개장수 면가(김윤식) (다음 발췌)

  이 세상 어딘가 분명 존재하고는 있지만 눈 돌려버리는 뒷골목의 그 어느 곳, 있어도 없는 듯 소리쳐도 안 들리는 듯 무시하며 살아가는 현실의 단면이 아무런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정체불명의 불편함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영화 황해는 눈 감고 귀 막아 버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가장 밑바닥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병'걸려 눈에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물어 죽이는 것을 넘어서 자신을 물었을지도 모를 개병 걸린 개의 시체를파먹어야 하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한 처절함이 넘치는 영화다.

면가와 거래를 하는 구남 (다음 발췌)

  황해에서 구남은 매우 현실적인 인물이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밀항선을 타고, 살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거창한 의협심이나 대의명분을 따져가며 큰 뜻을 이루거나 하려는 게 아닌, 자신과 가족을 위해 나름 자신의 범주 안에서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매우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죽자고 덤비는 사람들에게 죽자고 도망치며 자신의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그의 모습은 처절함을 넘어 그 처절함이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밀항선을 타고 한국에 들어오는 구남 (다음 발췌)

  영화 황해에서는 유난히 구남이 뭔가를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참 신기하게도 언제나 혼자 먹는 모습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 영화에서 '먹는' 장면은 그 당시 감독이 느꼈던 '식사를 함으로써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닌' 다음 몇 시간을 버티기 위해 '연료를 먹고 있는' 느낌을 그대로 살린다. 구남의 식사는 식사라는 느낌보다는 삶의 연장을 위해 위장 안으로 연료를 들이붓는 느낌이 든다. 잠시의 행복감이나 만족감을 삶에서 느낄 겨를도 없이 일분일초를 살아가는 구남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구남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주인공이 갖추어야 할 전형적인 느낌의 '멋스러움'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쓰레기 같은 인간사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에 하정우라는 배우가 조금 더 인간적인 면모를 더했다. 경찰을 피해 산에 오르면서 추워서 머리에 두른 것이 내복이었다는 것에 재미있었는데, 그런 모습까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만드는 건 분명 캐릭터 자체의 힘만은 아니었을 테니까, 전작인 추격자에서도 비열한 살인마 역할에 어딘지 모를 소년스러움이 가미되었었는데, 시종일관 뭔가 억울한 듯한 표정이 오히려 정겹다는 인상도 주었었다.

부인을 찾는 구남 (다음 발췌)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포진되어 있어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현실의 어두운 단면이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느낌이지만, 대사 전달이 부족한 부분들이 간혹 있는 바람에 이야기 파악이 제대로 안된 게 흠이라면 흠이다. 현장의 사운드 문제일지, 배우들의 성량 문제일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이유라 생각한다.) 대사로 복잡한 인물들의 관계를 이해해야 하는 영화이기에 이 부분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살해당한 교수 김승현과 그의 살해를 부탁한 세력, 그리고 엇갈린 추측으로 허무하게 뒤엉켜 버린 사람들의 운명. 김승현 교수의 아내와 내연 관계인 은행원 김 과장과 김태원 사장의 내연녀인 주영(이엘)과 면정학의 관계, 사실 이것들이 명확하게 정리가 잘 되지 않아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물론 이 상황들이 어찌 되었든 이들끼리의 연결고리에 날파리처럼 끼어들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되는 김구남(하정우)이 가장 안타까운 인물이긴 하지만. 

구남을 쫓는 면가와 부하들 (다음 발췌)

  도끼, 칼, 총, 야구방망이는 기본에 저녁식사 후 남은 뼈까지, 황해에 등장하는 살인의 도구는 장황하다. 뭐든 손에 닿으면 살인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총기 반입이 어려운 국내 상황을 고려해 칼이 자주 등자 이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낭자하는 피는 가뜩이나 잿빛인 영화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죽인 증거로 시체의 손가락을 잘라오라는 면사장의 요구에서부터 죽인 몸들을 토막 내 비닐에 담고, 머리는 따로 버리고 나머지는 개에게 던져주라는 대사도 서슴지 않고 나온다. 이 영화에서의 극도의 잔인함은 영화 내내 이어진다. 나홍진 감독의 이런 보여주기 식의 계산된 연출은 말초적인 시각을 자극하여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려는 의도였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잔인함'에 대해 무뎌지는 느낌까지 주게 된다. 그게 의도일지는 몰라도. 지루한 살인의 향연은 영화 초반에 거의 등장하지 않다가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김윤석의 존재를 일깨우기 위해서였을까, 유연성 있는 연출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과하지 않았나 싶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처절한 도망을 이어가는 구남 (다음 발췌)

  본인이 한국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던 구남이었지만, 아내의 발자취를 찾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한국땅에서 시신을 확인하고, 그 시신을 화장해 자신의 삶의 터전인 중국으로 가져갈 생각까지 한 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돈 벌겠다고 한국에 와서 연락두절이 된 아내가 생판 모르는 어떤 남자와 살림 차리고 사는 모습을 본인의 두 눈으로 확인한 남자가 이성적일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살해당한 조선족 여인이 자신의 아내가 맞다는 말에 조용히 화장비를 치르고 자신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신줏단지 모시듯 그 유골함을 안고 중국으로 향하는 배를 타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탄 것이 아니라 어부를 협박해 중국 쪽으로 배를 몰아가는 거였지만, 한국에서 억척같이 지켜낸 목숨, 배안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구남. 그의 흐릿한 시야에 중국 땅을 떠나던 아내의 얼굴이 스치듯 지난다. 그리고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 죽음도 허무한데, '황해' 바다 한가운데에 내던져지는 마지막 장면은 어쩐지 무섭도록 현실적이어서 소름 끼쳤다. '황해'는 중국과 한국의 영토를 잇는 영역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구남이 처음 한국땅으로 넘어오고,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영원히 잠든 그 바다로, 아마도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이어주는 구도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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