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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참혹함그이상.줄무늬파자마를입은소년(TheBoyInTheStripedPajamas.2008)

by 꿈꾸는구름 2019.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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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메인 포스터 (다음 발췌) 

  역사는 빠르게 바뀌며 그 속에는 아픔이 항상 존재한다. 과거에 그들이 겪은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것,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일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과거가 주는 가슴이 먹먹하고 아련해지는 슬픔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인류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참혹한 역사인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독일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의 참혹함, 나치즘, 홀로코스트 처럼 비극적인 사건들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영화이다.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의 참혹함이지만 역사는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같은 일이 반복되는 '우'를 범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주인공 독일 소년 브루노(에이사 버터필드)(다음 발췌)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어른들의 세계에 의해 줄이 그어진 순수한 두 아이들, 독일 소년 브루노와 유대인 소년 슈무엘의 우정이야기로 진행된다. 제 2차 세계대전,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요새화된 벽, 철조망, 교수대, 가스실, 소각장 등은 어두운 역사적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요소라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적 요소들은 영화의 서사 장치로 잘 녹아 들어가 있다. 무엇보다 두 소년인 브루노와 슈무엘의 사이를 가로막는 '철조망'의 존재는 타인에 의해 갈라진 이들의 모습에 더욱 안타까운 감정을 고조시키는 장치이자, 독일소년과 유대인 소년의 우정이야기 전개의 매우 핵심적인 소재라고 생각한다. 

유대인 소년 슈무엘(잭 스캘론) (다음 발췌)

  철조망을 앞에 둔 이들의 위치는 물리적으로 매우 가깝지만, 철조망 안과 밖의 아이들이 겪는 상황은 너무나도 상반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한 아이의 시선에서 어두운 역사의 단면을 보는데에 있다. 독일소년인 브루노의 시선에서는 단지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은 그저 파자마였고, 그들이 갇혀 있는 곳은 농장이었으며, 이들 옷에 적힌 숫자는 일종의 게임과 같아 보였다. 이렇게 순수한 주인공의 시선과 순수한 두 아이들의 관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우정을 쌓아가는 두 소년 (다음 발췌)

  이 영화는 2006년에 출간 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따뜻하며 슬프고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라는 평이 많았다. 그 이유는 폭력, 증오, 굴복으로 얼룩진 어른들의 모습과 대비된 어리고 순수한 소년들의 감동적인 우정이야기가 다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독일 군인 아버지를 둔 독일 소년의 원작소설 이야기를 충실히 반영한 영화이다.

철조망 너머로 대화를 하는 소년들 (다음 발췌)

  독일 군인가족으로 철저하게 유대인과 독일인과의 관계에 대해 주입식 교육을 받은 소년은 유대인을 적으로 해충같은 존재로 유해한 존재로 인식하는 누나와는 달리 착한 유대인도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물론 그 이면에는 몰래 우정을 쌓고 있는 유대인 소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며, 착한 유대인을 발견한다면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꺼라는 어른들인 아버지와 선생님의 말을 들어도 브루노는 슈무엘이 우정을 나누고픈 '사람'이며 아무리 봐도 '나쁜' 유대인은 아닌것 같다. 아이들끼리는 그들만의 교감방식이란게 있으니까, 많은걸 공유하지 않아도 서로 알것이다.

수용소의 책임자인 브루노의 아버지 (다음 발췌)

  영화에서는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혹한 실상이나 잔혹한 장면들을 나열해 보여주지는 않는다. 멀리서 보이는 연기나는 굴뚝이나, 멀리서 들리는 호루라기 소리, 먼 곳에서 작업하는 유대인들의 모습 정도만 화면에 어렴풋이 비춰줄 뿐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우린 이미 그 참혹함을 익히 알고 있기에 더 깊숙히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심리도 있다. 그 속에서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정확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말해주는 참혹함은 진실을 발가벗겨 놓아도 모자르다. 갑자기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며 침울해 있던 슈무엘을 위해 브루노는 기꺼이 철조망을 넘어 수용소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슈무엘이 준비해 준 줄무늬 파자마를 입는다. 두 소년에게 이 모든게 놀이 같이 재미있는 일이었을 것이지만 그를 지켜보는 우리는 안타까움과 불안함에 그저 마음이 불편하다. 그저 줄무늬 파자마를 같이 입었을 뿐인데 그들은 똑같은 수용소 안 유대인으로 보인다. 역사가 줄 그어 놓은 철조망을 넘는 일도 같은 옷을 입는 일도 이렇게 쉬운 일인데, 역사 속의 그때는 이 모든게 삶과 죽음을 갈라 놓을 수 있는 일이었다는게 그저 놀랍고 먹먹한 일이다.

줄무늬 파자마를 똑같이 나누어 입은 두 소년들 (다음 발췌)

  무엇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압권인데, 마지막 장면 그 하나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나 기획의도를 확실하게 관객이 파악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철학적이거나 무겁거나 스타일리쉬한 영화가 아닌 그저 독일 소년이 겪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어떤 연민을 조장하기 위해 과한 클로즈업을 하거나, 억지스러운 상황을 만들지도 않는다. 카메라 앵글이 어떻든 어떤 색감이든 간에 이 당시의 상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인류 최대 비극의 역사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소각실에 갇히게 된 두 소년 (다음 발췌)
두 소년의 꽉잡은 두 손이 너무나 끔찍하게 슬펐던  (다음 발췌)

  어른들에 의해, 어른들에 떠밀려 어딘지도 모를 공간에서 갑작스런 일에 두렵고 무섭지만, '샤워를 하고 빨리 나가서 아빠를 찾자'고 두 손을 꼭 잡은 소년을 보며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느낌은 단지 '참혹함'이라는 말로 표현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저 8살짜리 두 소년이 어른들이 그어 놓은 철조망을 사이로 우정을 쌓고, 출신이 어떻든, 계급이 어떻든, 민족이 어떻든 상관없이 서로 이름을 말하고 마음만 맞으면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순수함이 전부인 아이들이 또다시 어른들에 의해 참혹한 결말을 맞게 된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영화를 보고 이러한 감정을 관객이 겪기를 기대했다면 참으로 잘 된 기획이고 연출이다. 잔잔한 감동으로 시작해 전쟁에 대한 참혹한 실상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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