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영화리뷰]화해의여정.몬태나(Hostiles.2017)

by 꿈꾸는구름 2019. 8. 11.
반응형

-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메인 포스터 (다음 발췌)

여정을 떠나는 군인과 인디언들 (다음 발췌)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1892년은 사실 상 백인과 인디언의 전쟁이 끝난 시점이다. 인디언들은 싸움에서 패배하고 일정한 보호구역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게 된 시기이다. 이전의 적대적 관계에서 서서히 보호해야 할 소수인종이라는 생각이 백인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었고, 자신들이 인디언들의 영토를 침범했다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인디언들과의 싸움이 사실상 종료 됨에 따라 군대도 서서히 존재감을 상실해 가는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인디언들과의 싸움으로 잔뼈가 굵은 조셉 블로커(크리스챤 베일)는 군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명예가 서서히 사라져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단지 연금을 받기 위한 명예로운 제대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변화의 시기에 변하지 않음은 도태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죽이고 싶은 적과의 동행은 그를 서서히 변화시킨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동료인 라우데 상사는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조샙 블로커(크리스챤 베일) (다음 발췌)

  이 영화는 백인과 인디언의 대립과 갈등, 화해와 협력 그리고 공존을 담고 있다. 큰 줄거리는 그렇지만 가족들이 인디언에 의해 몰살당한 로잘리 퀘이드(로자먼드 파이크)를 보면서 미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독립이 등장하기 시작함을 느낄 수도 있는 영화다. 아울러 미국이라는 나라의 변화의 시기를 담고 있는 영화 이기도 하다. 우리의 인생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생로병사는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 친구, 동료 등의 긴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아픔이나 죽음은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인 인간이기에 함께하는 사람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 우리가 한번쯤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죽음'이라는 명확성 때문이다. 확실한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며, 확실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인생이 살만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확실성 때문이다. 확실하고 명확하면 살아갈 이유도 재미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생의 묘미는 불확실성이지 않을까?

아픔을 간직한 조셉 블로커 대위 (다음 발췌)

  목적지인 몬태나로 향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엿보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우리의 삶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한때는 적이었지만, 위험한 순간에 동료로 같이 해주기도 하고, 과거에 동료였지만 다시 적으로 해를 가하기도 하고. 자신이 죽이고 싶었던 적을, 그리고 자신이 용서한 적을, 그리고 이제는 동료가 된 적의 죽음을 맞게 되는 사람들. 또 동료였지만 이제 적이 되어버린 사람의 죽음을 보게 되는 사람들. 단순하게 엮여있지 않은 우리네 인생사와 같이 하나로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인간관계는 이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몬태나로 향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 영화는 서서히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서 같이 마음 아파하게 되고 울분하게도 된다.

가족들의 장례를 치르는 로잘리와 군인들 (다음 발췌)

  '적대자'라는 뜻의 원제 'Hostiles'처럼 '몬태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적대심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각양각색의 인물들로 구성된 채 '몬태나'라는 공통의 목적지로 향하는 호송단의 모습은 '인종 백화점'이라 불리는 미국을 은유한다. 오로지 나만의 신념, 나만의 슬픔, 나만의 분노만을 울부짖으며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던 그들이 몬태나로 향하는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넘나들며 차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가는 모습은 증오로 가득 차 있는 지금의 미국, 아니 총성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증오의 행성인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적대자(HOSTLES)인 옐로우 호크 추장과 조샙 블로커 대위 (다음 발췌)

  인디언들이 백인들을 향한 격렬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코만치들에게 가족 모두를 잃은 로잘리, 그리고 인디언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수많은 전우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조셉 대위 또한 인디언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는데, 이처럼 '몬태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증오의 연쇄'를 장엄하게 관조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 이기도 한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절대적인 선악의 구분을 짓지 않고 선악이 공존하는 사실주의적인 연출을 특징으로 하는 수정주의 서부극의 특징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정중에 치유를 해가는 사람들 (다음 발췌)

  또한 수차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영화속 그들의 여정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때로는 내가 한 선택으로 인해 고통과 절망에 빠진 채 후회하기도 하며, 또 때로는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자책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인생을 묵직하게 은유하고 있다. 서부극이나 너무도 고요하고 정적으로 흐르는 영화의 분위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게 된다. 로드무비 같기도 하고 자연 풍광을 담은 다큐 같기도 한 오묘한 매력의 이 영화는 보는 나 스스로도 자연 치유가 되는 느낌의 영화였다.

'몬태나'는 한마디로 '치유'의 영화이다. (다음 발췌)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