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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숲을나오자숲이보인다.레이디버드(LadyBird.2017)

by 꿈꾸는구름 201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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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메인 포스터 (다음 발췌)

주인공 '크리스틴'역 시얼샤 로넌 (다음 발췌)

  영화감독인 그레타 거윅은 감독보다는 배우로 이름이 먼저 알려진 여성이다. 블록버스터에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드라마 요소가 강한 영화에 주로 출연을 하였으며 매우 독특하고 개성 강한 캐릭터를 너무도 훌륭하게 연기를 해낸 배우로 인디 영화계나 소규모의 저예산 영화에 주로 출연을 해 온 배우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독립영화계에서는 오히려 최고의 스타 감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알린 건 꽤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녀의 첫 장편 단독 연출작인 '레이디 버드'는 그녀 본인의 경험을 모티브로 제작된 자서전적인 성장영화이다. 그레타 거윅의 뛰어난 각본과 연출, 그리고 주연배우인 '시얼샤 로넌'과 '로리 멧칼프'의 빼어난 캐미 등이 절묘하게 조화된 이 영화는 개봉 다음 해인 2018년 1월에 열린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2관왕(뮤지컬 코미디 부분 작품상,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5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북미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주연배우인 '시얼샤 로넌'과 엄마 역인 '로리 멧칼프'의 빼어난 캐미(다음 발췌)

  2002년,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새크라멘토에서 가톨릭 사립 여학교에 재학 중인 17살 소녀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일명 레이디 버드의 성장기를 담고 있는 영화 '레이디 버드'.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직접 소화한 미국 독립 영화계의 최고의 스타 배우 그레타 거윅은 공교롭게도 출연하는 작품마다 뉴요커로 출연하면서, 흔히들 뉴욕에서 나고 자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 크리스틴과 마찬가지로 캘리보니아 새크라멘토에서 태어나 2000년대 초반 가톨릭 사립 여자 고등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 뉴욕의 버나드 칼리지에 진학하게 되면서 뉴욕에 자리 잡게 된다. 이처럼 '레이디 버드'의 배경 설정이 그레타 거윅의 개인사와 워낙 닮은 부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그레타 거윅은 언제 어디서나 ' 영화 속 이야기가 모두 본인의 이야기냐? '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레타 거윅의 대답은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이 저와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크리스틴은 제가 아닌 이 세상의 모든 딸들의 십 대 시절을 상징하는 캐릭터입니다. 크리스틴의 엄마 마리온(로리 멧칼프)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상징하는 인물이고요."였는데. 그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레이디 버드>는 방종과 타락의 길로 자꾸 엇나가기만 하는 십 대 딸 크리스틴, 그리고 그런 딸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엄마 마리온, 이들 모녀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인 까닭에 아무래도 남성 관객보다는 여성 관객들이 더 깊게 공감하고,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십 대의 성장기라는 점이 남녀 구분이 그렇게 큰가 싶기도 하지만 홀로 관람하는 여성들이 많았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니 아무래도 여성들이 이 영화를 접하는 접점이 남성과는 다르긴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없는 십 대들의 성장기는 언제나 공감이 되고 수긍이 가는 이야기들이다.

크리스틴과 절친 줄리(비니 펠드스타인) (다음 발췌)

  고등학교 졸업까지 1년을 남겨 둔 크리스틴은 부모님이 지어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이 너무 싫은 나머지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는 예명을 지어 친구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부르길 강요한다. 부유하지 못한 부모님이 너무나 부끄럽고 싫은 크리스틴은 '레이디 버드'라는 자신의 예명처럼 고향 새크라멘토와 정반대에 위치한 뉴욕에 있는 대학으로 훨훨 날아가 가족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꿈이다. 철없고 미숙하기 이를 데 없는 크리스틴은 어리석게도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물질적 풍요의 크기가 곧 자식에 대한 사랑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엄마와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불만을 쏟아낸다. 스스로 지원한 연극부에서도 자신이 아닌 자신의 베프인 줄리(비니 펠드스타인)가 주인공을 맡게 되자 연극부에 대한 온갖 험담을 늘어놓고, 연극부 활동 중 죽은 아들이 떠올라 갑작스럽게 폭풍눈물을 쏟아 낸 리비아치 신부를 두고 지질하다며 다른 아이들과 함께 비웃는가 하면, 사라 조안 수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온화한 훈육도 마냥 듣기 싫은 잔소리로만 받아들이며 수녀의 차에 몹쓸 짓을 하는 것도 모자라, 성교육 강사에게 끔찍한 패드립을 날려 그녀의 멘털을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기까지 하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허영덩어리이자 사고뭉치인 '크리스틴'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중에 크리스틴과 같은 아이들을 별생각 없이 '싹수가 노랗다'라는 잔인하고 막돼먹은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접하곤 한다. <레이디 버드>는 금방이라도 썩어 문드러질 것 같았던 노란 싹 크리스틴이 어른들의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 덕분에 건강한 푸른 싹으로 자라나, 성인으로써 세상에 첫발을 내딛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담백하게 그려냄으로써, 옹졸하고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나와 같은 어른들을 날카롭게 일깨워 주고 있는 작품이다.

크리스틴의 아빠(트레이시 레츠)와 엄마(로리 멧칼프) (다음 발췌)

  <레이디 버드>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모녀 관계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연기해준 시얼샤 로넌과로리 칼멧프의 뛰어난 현실적인 케미가 아닐까 싶다. 존 언스트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 오디오북을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과격한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이라던지, 쇼핑 내내 입을 한 발이나 내밀고 투덜거리던 크리스틴이 엄마가 예쁜 옷을 골라주자마자 좋아서 팔짝팔짝 뛰어오르는 모습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법한 에피소드들은 관객들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해 준다. 물론 상대적으로 나를 포함한 남성 관객들은 그러한 사건들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그와 더불어 내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너무도 당연하게, 아니 너무나 하찮게 여기기만 하는 크리스틴과 그런 그녀를 탓하고 꾸짖기보다는 자식에 대한 넓고 깊은 사랑으로 크리스틴의 어리고 미숙한 마음을 묵묵히 인내하고 품어주는 엄마인 마리온과 아빠인 래리의 모습을 통해, 자연스레 나와 내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게끔 만들어 가슴을 온통 먹먹한 울림으로 가득 채우게 한다. 이미 나도 부모이긴 하지만 부모가 되어도 그 부모에 대한 사랑의 깊이는 헤아리지 못한다. 영화에서는 현실적인 상황 설정과 배우들의 진정성 가득 담긴 연기에 힘입어 감동의 크기가 한층 더 배가 되어 보인다.

크리스틴과 그녀의 친구 대닐 (루카스 헤지스) (다음 발췌)

  래리와 마리온처럼 헌신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부모를 둔 자신이 얼마나 큰 행운아인지는 까맣게 모른 채, 부잣집 친구들의 화려하고 부유한 삶만을 동경하던 크리스틴은 아이리시 가톨릭 집안의 엄격한 분위기 때문에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부모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며 오열하는 엄친아 대니, 자기 딸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으면서 돈만 던져주는 부모를 둔 학교 최고의 퀸카 제니, 암에 걸려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버지로부터 방치된 퇴폐적 섹시가이 카일 등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하찮게 여기기만 했던 부모님의 사랑이 사실은 억만금을 준다 하더라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감사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지루하고 따분한 곳이라며 그토록 간절히 떠나고 싶어 했던 새크라멘토가 사실 얼마나 아름답고 정겨운 곳인지를 뉴욕으로 떠나기 직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크리스틴의 모습 또한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의 존재를 새삼 깨닫게끔 만들어 줘서 참 좋았다. 크리스틴은 '레이디 버드'라는 자신의 예명처럼 둥지를 떠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언제나 자신을 따뜻하게 보호해주었던 둥지, 즉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데, 소중한 것은 그것을 벗어나야 알 수 있게 된다는 평범하고도 오랜 진리를 피부로 느끼게 해 준다. 사춘기 혹은 성장기 영화이기도 하지만 삶을 다할 때까지 우리들이 되새겨야 할 삶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영화다.

주연배우인 '시얼샤 로넌'과 감독인 '그레타 거윅' (다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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