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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위로해주는서툰방법.기쿠지로의여름(菊次郞の夏.Summer Of Kikujiro.1999)

by 꿈꾸는구름 2019.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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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메인 포스터 (다음 발췌)

이 영화의 두 주인공 기타노 다케시와 세키구치 유스케 (다음 발췌)

  고백하자면 이 영화를 본 이유는 순전히 OST인 히사이시 조의 'SUMMER' 때문이다. 피아노 연주곡을 좋아하는 나는 일본 영화 OST 음악을 많이 듣고 좋아하는 편이다. 애니메이션 주제곡이 대부분인데 'SUMMER'라는 곡은 애니메이션 주제곡이 아니면서도 자주 듣게 되는 곡이다. 음악을 듣다가 문득 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영화가 보고 싶은데?... 라는 생각이 떠올라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와 너무 반갑고 좋았다. 다리위를 해맑게 웃으며 뛰어가는 한 소년을 보면서 '저 아이가 기쿠지로구나...'라 생각하면서, 기분좋은 영화겠거니하며 미리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기분좋게 빗나간 건 영화 시작하고 10분 정도 지난 시점. 또 다른 주인공이자 이영화의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매우 껄렁하고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해 보이지만 세속에 찌들어 보이는 듯한 그의 인상에 '아... 뭐지...' 'SUMMER'라는 음악은 속임수였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기타노 다케시와 세키구치 유스케 (다음 발췌)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기타노 다케시의 다른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안면을 어색하게 깜빡이는 그의 얼굴 표정이 나온다. 영화의 분위기가 분명히 밝고 따뜻할 거라 예상했던 내 기대가 기분 좋게 빗나가, 전직 야쿠자로 등장하는 이 아저씨의 기괴한 행동들이 전혀 다른 예상을 했던 나를 굉장히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일본 영화 특유의 병맛스러운 유머 코드들이 쉼없이 나열되는데,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좋아하지도 않는 그 유머가 너무 낯설고 불편하고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 집중에 방해가 되었다. 분명히 밝은 영화일 거라 예상했는데... 가끔 불쑥 튀어나오는 기타노 다케시의 욕설은 무방비 상태의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까지 했다. 그나마 위안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영화 내내 다른 버전으로 흘러나오는데, 귀에 익숙한 피아노 버전부터 바이올린, 오케스트라 변주곡 등 음악이 나올 때마다 영화 속에 펼쳐지는 싱그러운 일본의 여름 풍경과 함께 뭔지 모를 감정이 가슴에 스며드는것이 좋았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고 영화에서 나오는 음악은 굉장히 경쾌한데 왠지 모르게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악을 듣고 있자니 묘하게도 가슴 한편에 뭔지 모를 싸함이 느껴진다. 이 영화 뭘까하는 생각이 든다. 

철없는 아저씨와 속깊은 초등학생 (다음 발췌)

  철없는 아저씨와 속 깊은 초등학생이 길을 나선다. 영화는 이 아저씨를 최대한 철없게 그린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엄마를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이들의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영화를 보는 사람은 우리의 초등학생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안타까워한다. 아이의 안타까움의 클라이맥스는 그렇게 어렵사리 찾은 엄마를 아이가 먼발치서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잠시 멀리 떨어져 지낸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생활하고 있었고, 심지어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곳 어디에도 엄마를 찾아온 아이의 낄 자리는 없다. 이후 이들은 세 아저씨를 만나 남은 여정을 즐기고 나름의 여행을 마무리한다.

둘의 여정은 사실은 한명의 여정인 셈이다. (다음 발췌)

  아저씨와 헤어지기 직전에 아이는 아저씨에게 이름을 묻는다. 이름이 뭐냐고. 자신의 이름은 '기쿠지로'라는 아저씨. 당연히 아이의 이름이 '기쿠지로'겠거니 했던 생각이 또다시 기분 좋게 빗나가 버렸다. 그럼 이 영화가 저 아저씨의 여름 이야기였다는 건가? 저 아이가 주인공이 아니었던 거야?라고 생각하던 찰나. 결국 아이인 '마사오'와 아저씨 '기쿠지로'는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저 아이는 아저씨의 과거였던 셈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아이와 아저씨의 성장 드라마였던 것이다. 어렵게 찾아 간 엄마의 행복한 모습에 실망하여 돌아오는 마사오와 연결되는 건, 기쿠지로 아저씨가 양로원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그런 마사오를 보면서 기쿠지로 아저씨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것이고, 그래서 아이가 더 애잔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서툴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아이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것이다. 

아이를 위로하고자 모인 네명의 어른들 (다음 발췌)

  이 영화의 후반에는 기타노 다케시를 비롯해, 여러 명의 변태틱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이게 뭔가 싶은 해괴한 행동을 보여준다. 대머리에 물감을 칠해 문어로 변신한 대머리 아저씨나 벌거벗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장면은 지극히 일본적인 병맛 코드의 개그이지만 왜 모였는지 싶은 이 네 명의 어른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마사오를 위로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들이다. 그게 따뜻함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처음엔 이게 뭐 하는 거지? 라면서 보던 내가 이내 그들의 애쓰는 모습에 웃음을 짓게 되고 아이를 위하는 마음들이 전해져서 그들의 병맛 코드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익히 알고 있거나 어디선가 보았을 법한 방법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은 마사오를 위로해 주었다면 이 영화는 끝까지 나를 배반하는 영화로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방법은 확실히 달랐다.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다웠다.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내내 이해안되는 행동들만 보인 기쿠지로 아저씨는 결국 마사오를 위로한다. (다음 발췌)

  기쿠지로 아저씨를 연기하는 기타노 다케시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지거나 거부감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그의 연기를 보고 조금 힘들 수 있겠다. 그의 배우로서의 연기와 감독으로서의 생각도 일반인이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은 아니기에. 그리고 '마사오'역을 소화한 '세키구치 유스케'라는 아역 배우의 연기도 배우답지 않은 시선처리와 연기가 낯설다. 이 모든 게 기타노 다케시의 계획된 연출이라면 대단한 것 같다. 아이의 연기가 처음에는 어색해서 편히 보기가 어려웠지만, 영화 내내 거의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연기가 감독의 연출에 의한 것임을 마지막 장면에서 해맑게 뛰어가는 마사오의 표정을 보면서 알아차렸을 때는 기타노 다케시의 내공이 느껴지고 이 영화가 칸 영화제 경쟁작이었다는 사실이 '번뜩' 떠 올랐다. 그래 기타노 다케시였지...

일본의 거장이자 명배우인 기타노 다케시 (다음 발췌)

  순전히 영화음악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이지만 이제 여름이 되면 기쿠지로 아저씨와 마사오가 거닐던 일본 어느 곳의 여름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어색하게만 보이던 그들의 간격만큼이나 먼발치서 영화를 보던 나의 시선도 어느새 밀착되어 그들의 표정하나 하나를 관찰하게 되었던 것처럼, 두 남자의 간격만큼이나 어색한 감정을 영화음악 'SUMMER'로 안정시킬 수 있을 것만 같다. 여러모로 참 괜찮은 영화이다. 다 보고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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