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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과연'나'라면.암살(Assassination.2015)

by 꿈꾸는구름 201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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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일제 강점기. 1910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35년간 일본이 강제로 조선을 식민 통치한 기간. 극 중 속사포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한 3년은 '욱하는 성질'로 해보겠지만 그 오랜 시간을 과연 독립운동가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게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 주어진 질문이었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과연 '나' 라면...

  영화에서 다루는 친일파 청산은 200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까지도 아직 명확하게 해결하지 못한 과제로 남아 있으며우리나라의 어두운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지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나름의 유쾌함과 적절한 액션으로 긴 상영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배우'들이다. 전작 '도둑들'에서 이미 우리나라 영화계의 내노라하는 배우들을 대거 영화에 출연시켜 재미를 본 최동훈 감독은 이 영화에도 그에 못지 않은 명배우들을 대거 출연시키고 있다. 더러 '도둑들'과 겹치는 출연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배우들의 조합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영화 암살의 포스터 (다음 발췌)

  실존인물인 '안윤옥'을 연기한 전지현은 '도둑들'에서도 '연기력'을 선보인 바 있었으나, 이 영화에서는 저격수에 독립운동가라는 설정을 연기해야 했는데 여성이지만 특유의 저음이 매우 매력적으로 배역에 흡수되었다. 물론 20년 넘은 개인적인 팬심이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어느 영화의 전지현 보다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쌍둥이 연기를 해야해서 1인 2역을 하기도 해야 했음에도 비주얼만 좋은 '모델'같은 배우가 아닌 '연기'를 펼치는 배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저격수이다 보니 액션 장면도 꽤 많았는데, 마지막 결혼식장에서의 총격씬은 마치 예전 홍콩 영화의 그것처럼혼란스러웠지만 뭔가 아름다운 장면들을 만들어 냈다. 인상적인 장면은 부상을 당해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일본 놈과 친일파 한두 명 죽인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는 물음에 " 그래도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는데, 눈물을 머금은 채 낮게 깔리는 저음으로 울부짖는듯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질 때 그녀가 보여준 아니 그 시대에 있었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의지를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저격수 '안윤옥'을 연기한 '전지현님' (다음 발췌)

  전작 '도둑들'에서도 배신자로 나오더니 이번 영화에서도 이중 스파이로 등장하는 염석 진역의 '이정재'는 이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명배우이다. 오버스런 연기를 한다는 평가들도 아직 존재하고는 있지만 그의 연기는 어느 배역에서든 빛을 발하고 있으며 '관상' '도둑들'에서의 연기도 호평을 받았지만, 이 영화의 연기로 다시 한번 그 진가를 발휘했다고 본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요직을 맡아 암살작전을 주도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그 정보를 일본에게 넘기며 경제적 이윤을 챙기는 염석진은 결국엔 젊은 시절 자신이 암살하려던 매국노 '강인국'의 편에 서서 친일파 앞잡이가 된다. 독립운동가에서 밀정으로, 일본 헌병대에서 다시 재편된 한국 경찰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험난한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한 인간으로 이해는 되지만 민족의 고통을 생각하면 용서는 안된다. 거의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이런 식으로 변절을 했다고 하는데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대변해 주는 대목이기도 한 것이, 독립운동이라는게 어지간한 의지력으로는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이중 간첩인 '염석진'역의 '이정재' (다음 발췌)

  하와이에서와 삼백 달러만 주면 누구든 죽여준다는 전설적인 킬러 '하와이 피스톨'의 하정우. 그의 능청스러운 유머러스한 연기를 보고 싶었으나 영화의 분위기를 담당했는지 시종일관 진중하고 차분한 연기를 보여준 하정우는 돈만 밝히는 청부 살인업자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돕는 인물로 변모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친일파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떠돌아다닌다는 설정도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극 중 안윤옥(전지현)과 묘한 관계를 보이기도 하는데, 영화의 중후반을 이끌어 나가는 인물이다.

살인 청부업자 인 '하와이 피스톨'을 연기한 '하정우' (다음 발췌)

  신흥 무관학교 출신의 무력 독립운동가로 등장하는 '속사포'역의 조진웅은 무거운 이 영화의 분위기를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 주는 캐릭터이다. 속사포라는 닉네임이 총기를 잘 다루어서 그런 것인지 말을 많이 해서 그런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수다쟁이 같은 언변을 늘어놓으며 영화의 재미를 더해 준다. 개인적으로는 조진웅 배우의 이런 캐릭터가 너무 좋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기에 진중하고 무거운 배역도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왠지 코믹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의외성'이 주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영화에서는 강인한 의지력으로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를 연기한 '조진웅' (다음 발췌)

  약산 김원봉을 연기한 '조승우'는 특별출연으로 이 영화에 등장하지만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무게감을 숨길 수 없었다. 김원봉이라는 인물은 임시정부의 수장이었던 '김구'선생님보다 현상금이 더 많았을 정도로 일본의 입장에서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의열단'을 조직하여 무력으로 일본에 항거하는 방법을 택한 김원봉은 이 영화에서도 '암살'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비상한 머리로 일본에 정보가 나가는 것을 피해 가기도 한다. 해방 후 북한을 선택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에서는 언급이 잘 되지 않았던 인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로 제작되어도 좋을 중요한 독립운동가 중에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상해 임시정부의 조력자인 '김원봉'역의 '조승우' (다음 발췌)

  이경영이라는 배우는 언젠가부터 악역을 주로 연기하고 있는데 예전에 보이던 그 착한 웃음과 선한 눈빛을 알고 있는 예전 사람들이라면 그의 연기가 그립기는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악역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너무 악역의 이미지로 자리매김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친일을 위해 자신의 딸과 아내까지 매정하게 살해하는 비정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출해서 몰입도를 높여주었다.

친일파 '강인국'역의 '이경영' (다음 발췌)

  김구 선생은 장대한 체구를 가지고 호쾌한 성격의 무관 같은 이미지를 지녔다고 하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김구 선생역할의 김홍파 님은 체구는 작으시지만 풍기는 아우라가 출연배우 누구 못지않았다. 목소리도 조금은 과장되게 느껴지긴 했으나 김구 선생의 성격을 잘 대변해 낸 것 같다. 염석진과의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서도 베테랑 배우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눈빛으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인다. 

임시정부의 수장 '김구'선생 역의 '김홍파' (다음 발췌)

  그 외에 특별 출연한 아네모네 마담 역의 '김해숙', 강인국의 집사역의 '김의성', 강인국의 아내 역의 '진경' 등 주연급인 중견배우들의 조연 역할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영화에 녹아들어 있다. 그저 스쳐 지날 갈 수도 있지만 잔상처럼 뇌리에 남아 오랫동안 기억이 되는 건 그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는 반증일 것이다.  

특별출연한 '아네모네마담'역의 '김해숙' (다음 발췌)
조연이지만 강렬했던 '집사'역의 '김의성' (다음 발췌)
남편과는 달리 강인한 의지를 보인 강인국의 '아내'역 '진경' (다음 발췌)
영화를 보고나니 이 사진이 정말 슬프게 보였다. (다음 발췌)

  마지막에 올린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영정사진일 수도 있는 사진을 찍으면서 웃으라고 하는 '김원봉'과, 그의 말대로 웃음 짓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자신의 안위를 넘어선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게 의문이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대체 그분들의 생각과 의지를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닌 그분들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이 영화가 올해 개봉했던 '봉오동 전투'와 다른 점은 비단 출연 배우들의 차이점에서 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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