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영화리뷰]아들에게나는.그렇게 아버지가 된다.(Like father Like son.2013)

by 꿈꾸는구름 2019. 5. 7.
반응형

-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의 메인 포스터 (다음 발췌)

  201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지만 보는 내내 너무 울었던 탓일까. 유명 영화제 수상 여부랄지, 명감독의 영화랄지...는 별로 안중에 없게 되었다. 많은 이들의 극찬처럼 잘 만들어진 수작이다. 특히나 나 자신이 비슷한 상황에(아들을 키우는 상황) 있어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지나친 몰입으로 현실과 영화를 혼돈하기도 했다. 이왕이면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는 나로서는 이 영화는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 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노력해야 할 지'를 고민하게 하는 지침이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입장에서 '나를 아버지로서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족'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에 있어서 혈연과 같은 일종의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형태로만 형성되는 부분보다,각 구성원들이 어떤 관계를 통해서 의미를 만들어 내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소중한 의미를 알게해 주었다.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부부 (다음 발췌) 

  6년 동안 키워 온 아이가, 사실은 친아들이 아니라 출산 직후 바뀐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두 가정(특히 료타의 입장)의 이야기로서, 이 극단적이면서도 극적인 상황을 전제함으로 영화는 가족의 형성과 유지, 그 속에서의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 등에 대한 많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 물음은 ' 낳은 정이 소중한 지, 기른정이 소중한 지'에 대한 물음으로 귀결 될 수도 있고, 혹은 '아버지의 조건이라는 것이 부양자의 측면에서의 경제력이 우선시 되어야 할 지, 정서적인 교감을 통한 양육자의 측면이 우선시 되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아이의 양육과 관련해서도 선천적인 기질을 우선해서 키우는 것이 맞는지, 혹은 후천적인 노력과 교육으로 사회에 적응하기 보단 유리한 방향으로 강제로 키워나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도 하게 된다. 

 즐거운 한때. 료타(후쿠야마 마사히루)와 케이타(니노미아 케이타) (네이버 발췌)

  영화 속 주인공인 '료타'의 변화 과정을 통해 감독은 사실상 여러 질문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과 현실에 대한 적용의 문제는 여전히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가 아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되어가고 있다.)'는 진행형의 느낌이 나도록 지은것도 그러한 의미를 담은 장치였을 것이다. 료타도, 현실의 우리도 모두 아이와 각자의 가정의 중요한 한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되어가는 료타 (네이버 발췌)

  영화에 등장하는 상반된 두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대한 극명한 캐릭터의 대립은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결국 '료타'가 아닌 '유다이(릴리 프랭키)'의 손을 들어준다. 참 빠르게 적응하고 변해가는 아이들,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그렇게 주체적인 하나의 존재가 되어간다. 그렇게 빨리 성장하는 과정에서 꼭 그 때, 그 순간만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아버지'의 역할이며 그것이 아버지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이라 외치는 유다이의 모습에는 그 전에 보였던 허술함은 없다. 아버지는 아이가 성장하고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자리잡기까지 묵묵히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또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메세지가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또 다른 아버지 '유다이(릴리 프랭키)'(네이버 발췌)

  그러한 과정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주체적인 인격을 가진 아이로서, 아버지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구성원 스스로가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을 가지고 받아들일 때 유지 될 수 있는 것처럼, '아버지'라는 것도 아이의 출생이라는 혈연적 사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나 아이와 같은 다른 가족 구성원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주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것을 료타는 알아가게 된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부터, 세상에 저절로 되는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부쩍 느끼고 있다.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아이가 태어났나고 해서 저절로 아버지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 아닌가 싶다.

'좋은' 아버지란? '훌륭한'아버지란? (다음 발췌)

  새로운 구성원에 맞춰 바뀐 가족의 형태와 역할에 대해서 각자 적응하고, 서로 의미를 만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시간'도 당연히 필요할 것이고. 아이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알수가 있으려나? 아마 그 시기가 지나도 그 답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이라면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우리의 시간들을 쌓아나가면서 가족 구성원들로서의 유대감을 다져가고, 아버지로, 아들로 각자의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가 되고, 아이는 나의 아들이 되어갈 것이고, 우리 가족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