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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리뷰]숨막히는푸르름.그랑블루(LeGrandBleu.1988)

by 꿈꾸는구름 201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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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다수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90년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카페포스터.(다음 발췌)

  '그랑블루'는 1988년에 제작되어 우리나라에는 1993년에야 개봉한 영화다. 개봉에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극장에서 보지 못한게 두고두고 한스럽다. 90년대를 살아온 그 시절 청춘들이라면 장담컨대 영화는 못보았더라도 모두 이 포스터를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시내의 어느 카페를 가더라도 구석한자리를 차지 하고 있던 포스터가 바로 '그랑부르' 포스터 였으니까. 역시나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마도 바다가 주는 시원한 이미지가 그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보고만 있어도 말 그대로 '거대한 바다'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듯 하니까. 지금은 누구보다도 상업적인 감독으로 자리 잡은 '뤽 베송'의 초기 작품으로 실존인물인 자크와 엔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큐적인 느낌도 있었던것 같다. 처음에 개봉한 버전은 2시간짜리로 '커팅'된 영화였는데 '레옹'의 대히트 후 감독의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168분짜리 '그랑블루' 감독판이 비디오로 출시 되기도 했고, 감독판이 정식으로 극장에서 재개봉된 것은 2013년 7월의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210주(4년)의 롱런과 관객동원 1500만명의 세계 영화사에서도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며, 감독인 뤽 베송을 현대의 명감독 10걸에 올려놓은 결정적 계기가 된 영화이다.

그랑블루의 오프닝 크레딧. 흑백이미지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다음 발췌)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인생영화를 한편만 꼽는다면? 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영화를 선택할 것이다. 영화가 줄 수 있는 모든 매력에 이 영화를 처음 본, 당시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던 나는 말 그대로 풍덩 빠지고 말았었다. 영화에 대한 여러 평들에서 나오는 영화적 분석, 영화의 철학적인 분석....등 그런 복잡다단한 것들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그 당시 고등학교 2학년생에게는 화면과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 그 자체에 빠져들게 했다. 특히나 그랑부르는 잠수부의 이야기를 장대한 바다를 배경으로 해서 펼쳐지는 뤽 베송의 작품으로 다이빙 모습이나 각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 등 뢱 베송 감독 특유의 연출감각이 살아있으며,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했을 '수중촬영'이 뛰어나다. 미국의 기술로 촬영한 웅장한 수중 장면들이, 뤽 베송 특유의 프랑스적인 감각과 잘 어울렸으며 스토리보다는 영상미에 더 주안점을 두고 보는게 이 영화의 포인트이다.

흑백이라서 더 좋았던 어린시절의 자크와 엔조.(다음 발췌)

  영화는 흑백 화면으로 시작한다. 60년대 그리스의 한 섬에, 지는 것을 싫어하는 골목대장 '엔조(쟝 르노)'와 경쟁에는 관심이 없이 바다를 사랑하는 '자크(쟝 마르 바)'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둘은 대립하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둘도 없는 친구인 관계도 아니었다. 다만 공통점을 가진 친구로서 서로 남다른 관심은 가지고 있었다. '자크'는 잠수부였던 아버지가 바닷속에서 사고로 죽자 이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트라우마로 갖게 된다. 흑백의 차분한 화면으로 두 소년을 소개한 후에 80년대 이탈리아 시실리아로 이야기 무대가 옮겨진다.

80년대 시실리. 성인이 된 후 재회한 두 친구와 자크의 연인 조안나.(다음 발췌)

  여기서부터는 컬러화면으로 전환된다. 세계 잠수대회 챔피언이 된 엔조와 세상살이에 서툰 자크의 우정, 자크에게 첫눈에 반해 그를 뜨겁게 사랑하는 '조안나(로잔나 아퀘트)'의 관계가 거대하고 푸르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세 사람은 둘의 우정만큼이나 다양한 에피소드를 나열하게 하며 서로의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바로 다시금 '바다'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느것보다 평화로움과 평안을 느끼는 두 주인공 자끄와 엔조이다. 바다의 푸르름이 더 자세하고 더 거대하게 다가온다.

바다속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자크(다음 발췌)

  영화에는 감정을 소비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없는 대신, 바다에 대한 경외감이 듬뿍 담겨있다. 영화가 바다를 대하는 태도에는 신비로움, 경외심, 사랑 같은 감정이 묻어난다. 바다 깊숙한 곳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자크는 그래서 더 놀랍다.엔조와 자크가 나누는 대화에서 '인어'라는 단어가 마치 이상향처럼 자주 언급되는데, 인어가 반드시 여자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돌고래를 따라 심연으로 사라지는 자크는 아마도 인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심연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마치 그의 자리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으로 그는 칠흙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영화의 마지막장면. 돌고래를 따라 심연으로 사라지는 자크.(다음 발췌)

  영화 속의 우정은 글 초반에 얘기했듯이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자크와 엔조는 실제 프리다이버로 유명했던 프랑스의 '자크 마욜'과 이탈리아의 '엔조 마이오르카'가 모델이다. 뤽 베송 감독이 직접 자크 마욜을 찾아가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본을 썼는데 이때 그는 자크에게서 진심으로 바다를 대하는 태도와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감각을 그대로 영화로 옮기고 싶었던 감독은 스토리보다는 영상위주의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는 슬로모션 촬영기법을 이용하여 고양된 의식 상태에 있는 세계 최고의 심해 다이버를 정확히 묘사하는데 성공한다. 의식이 높은 상태에서는 슬로모션, 아름다움, 우아함이 주관적인 감각으로 자주 감지된다. 시간은 멈춘 듯하고 세상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은 침묵한다. 영화 전체에서 우리는 자크가 집중의 강렬함으로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그로인해 거의 항상 명상 상태에 들어 있는것을 목격하게 된다.

바다를 닮은 자크의 눈빛.(다음 발췌)

  물리적으로 풀이하자면, 자크는 그 바다 밑에서 오래전 잠수중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자신의 손으로 심해로 떠나 보낸친구 엔조를 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크적으로 풀이하자면 다시 뭍으로 올라와야 할 이유가 없는, 고요한 인어들의 세상으로 함께 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인 엔조의 마지막 선택은, 저 바다 밑이 더 이상 환영이 아닌 실재의 세계라는 무의식을 더욱 각인시킨 지점이다. 이 명확한 증거앞에서 이제 자크는 현시리에 존재하는 사랑하는 여인과 태어날 아기를 뒤로 하고, 바다 밑으로 내려가 돌고래의 손짓에 화답한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선택은, 생애 단 한번의 뜨거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야할 이유, 목표가 현실에 없다면 깊고 고요한 바다가 훨씬 편안할 수도 있겠다. 자크에겐 바다에 그 이유가 있었던것 같다. 그 이유가 사랑하는 조안나가 되지 못한게 너무 아쉽긴 하지만, 현실이 너무나 혹독하게만 느껴져서, 다른 나라, 다른 세상, 다른 삶을 꿈꾸며 현실에 맞서 나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엔조와 자크를 통해 극적으로 보여준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 영화는 누구의 인생도 구하지 못한다. 영화는 처방약이 아니다. 영화는 그저 아스피린일 뿐이다." -뤽 베송- 감독의 말대로라면 '그랑블루'는 아주 잘 듣는 아스피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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